이경훈 경기본사 사회부 기자
'옛것을 소중히 여기자.' 다시금 떠오르는 글귀다. 문화유산은 조상의 삶을 엿보거나, 민족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유산 가운데 상당수는 지자체의 외면으로 멸실(滅失)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외세로부터 내 나라를 지키려 했던 상흔(傷痕)과 수천 년간 명맥을 이어오던 소중한 문화가 무관심 속에 급격하게 소멸하거나 변형됐다. 과거 아픔과 추억을 되새길 흔적마저 사라진 곳도 부지기수다. 후손들에게 살아 있는 역사현장을 보여주기 어렵게 됐다.

전통자기 본고장인 이천시를 보자. 2000년대 들어 중국산 값싼 자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도공들의 생계 위협은 예견됐다. 저가 공세에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도공들의 신념도 추풍낙엽(秋風落葉)으로 쓰러졌다. 생계가 어려워지니 당연히 도예를 배운다는 후예까지 끊겼다. 말 그대로 전통도예 문화는 풍전등화 위기에 놓였다. 그러는 동안 이천시는 쏙 물러나 있었다. 그러면서 '전통도예 계승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로만 떠들었다. 도공들의 절실한 지원을 요청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고려청자'의 정수(精髓)를 한곳에 모은 한국도예의 산실인 이천 해강도자미술관도 산산조각났다. 고(故) 해강(海剛) 유근형 선생이 일생을 바친 미술관은 개인에게 팔렸고, 덩달아 도자 유물 1000여 점도 흩어질 지경이다. 원인은 이천시의 무관심에서 찾을 수 있다. 해강과 아들 광렬은 매년 2억~3억원이 드는 운영비를 대기 위해 버티다 못해 대출을 받거나 땅을 팔았다. 그렇게 18년을 버텼다. 이천시에 지원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시의 관심과 지원만 있었다면 미술관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한 광렬의 인터뷰가 잊히질 않는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아픔을 간직한 수려선의 마지막 사적(史蹟)인 이천 '오천역'이 대규모 택지개발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오천역은 협궤철도 원형을 보존한 유일한 곳이었다. 현재 상가 건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무리 민간소유라지만 시의 보존 의지만 있었다면 사적이 없어지는 일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이천시가 오천역이 없어진 이후 '잊힌 수려선을 기억하자'라며 각종 전시회를 여는 등 유난을 떨고 있다는 점이다.
이천시가 예술도시를 자처하면서도 문화유산 보존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은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비단 이천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내 독립운동 사적지 196곳 중 90% 이상이 아예 훼손됐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유산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도는 물론 시·군이 문화유산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세세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