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세상바라기] 인천일보의 희망과 철학
[김진국의 세상바라기] 인천일보의 희망과 철학
  • 김진국
  • 승인 2018.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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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기자가 돼서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며 조금은 당찬, 조금은 이상적인 의지를 품고 인천일보 공채 3기로 입사한 때가 1994년 가을이었다. 인천일보 공채2기 시험에 떨어진 뒤 재수 끝에 입사한 터라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매일 파출소(지구대)와 병원응급실, 경찰서를 돌며 사건을 체크하는 '사쓰마와리'(察廻, 야간시찰)를 하는 사회부 막내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을 향한 더듬이를 마음껏 뻗칠 수 있는 기자직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재미 있었다. 집회가 열리면 시위대처럼 군중 속에 파묻혀 현장을 누볐고,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이 터지면 경찰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비리를 취재하다가 협박과 함께 신분증을 빼앗긴 적도 있고,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기사를 작성했다가 민형사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회부 막내기자 생활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숨 한 번 돌릴 틈 없을 정도로 허리춤에선 '삐삐'가 연신 울려댔고, 며칠 동안 어렵게 취재해서 올린 기사는 벅벅 찢어발겨진 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선배들과의 대화는 사람 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육두문자와 정연한논리로 완전무장한 선배들이 난사하는 온갖 '지적질'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며칠 만에 데스크의 'OK' 사인을 받은 기사라 하더라도 노란 원고지는 온통 빨간펜으로 뒤덮여 있었다. '빨간펜 선생님'인 선배들에 의해 '딸기밭'으로 변한 원고지를 보며 '나는 기자로서 자질이 부족한가' 회의를 가졌던 때가 한 두번 아니다.

낮에 실컷 욕을 먹인 선배들은 저녁 어스름이 찾아오면 그 이상의 술을 먹였다. 선배들이 글라스 하나 가득 채워주는 차가운 소주를 빈 속에 들이부었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해서 선배들에게 대들고, 이튿날 후회하는 생활이 한동안 계속됐던 것 같다. 바이라인(기사 끝에 쓰는 기자 이름)을 단 기사가 처음 나갔을 때는 신기하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다.

후배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5년 정도 사회부 기자생활 뒤엔 경제부, 제2사회부, 산업경제팀, 정치부를 거쳐 문화부에 정착했다. 정서에도 맞고 한 분야만 파고드는 것도 괜찮겠다며 문화부에만 있겠다고 고집을 피워 운 좋게 오래도록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대에 들어와 세상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산 25년의 세월을 보낸 현재 50대가 되었고, 그 기간 동안 여러 대표이사와 10여명에 이르는 편집국장을 모신 것 같다.

그런 기자의 고향 '인천일보'가 지난 15일 창간 30주년 행사를 치렀다. 인천일보 30주년의 의미가 인천시민·경기도민들에게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독재정권의 언론통제정책인 '1도1사'(1개 시·도에 1개 신문만 발행허가)로 오랫동안 언론이 없던 인천에서 우리 지역을 대변하는 신문을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 6·10항쟁에 따라 '대통령직선제'와 '언론자율화'를 약속한 6·29선언이 이어졌고, 1988년 7월15일 인천신문(현 인천일보)이 빛을 본다. 인천신문의 창간이 유의미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광복 이후 태동한 인천언론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최초의 민간신문으로 탄생한 '대중일보'는 이후 '인천신보' '기호일보' '경기매일신문'으로 제호를 바꿔 운영한다. 대중일보 창간 때부터 줄곧 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한 진보적 신문인 경기매일신문은 그러나 군사정권에 의해 1973년 강제폐간된다. 경기매일신문과 함께 인천에 본사를 둔 인천·경기지역 유력지인 '경기일보' 역시 수원의 연합신문에 통폐합되면서 인천언론의 역사는 단절된다. 그러던 것이 15년 만에 부활했으니 인천사람들로서는 어마어마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지역의 많은 선배들은 인천일보 창간 당시, '대중일보' 혹은 '경기매일신문' 복간선언을 하지 않은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15일 창간30주년을 맞은 인천일보는 현재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하는 중이다. 올해 초 '인천일보TV' 방송국을 개국하고 신문방송 겸영을 시작한 것이다. 법정관리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난해부터 대기업 계열사가 되면서 미래도 밝아졌다.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으나 인천일보는 '썩어도 준치'다. 창간 30주년 기념식을 치른 지난 13일 인천일보는 지역민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의 행복과 번영을 실현하려는 우리 지역의 철학과 가치를 제대로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미래 30년, 100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인천일보에 독자·시민들의 응원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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