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석 경기본사 사회부장
몇 년 전 보육교사에게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민간 어린이집 영유아들에게 먹였다는 '급식사진'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찬밥에 콩나물 한 가닥 든 국, 김치 두 조각, 스크램블 에그 조각 서 너 개가 전부였다. 아이들이 먹기 전 사진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주간식단계획표에는 그날 쇠고기 뭇국에 소시지 채소볶음 등을 준다고 돼 있었다. 근무한 6개월 동안 원장이 매일 비슷하게 차렸다고 했다. 쇠고기 등 식단계획에 나온 식자재는 꼬박꼬박 샀지만, 원장네 식구들 입으로 들어갔다는 설명도 했다. 부모들은 눈물을 흘렸다. 용기를 냈던 보육교사는 해고됐고, 그 지역 원장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면서 먼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어린이집의 아동학대와 폭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영아를 상대로 일부 몰지각한 보육교사들의 아동학대가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게 심히 우려스럽다. 90년대 초 '수면제 낮잠' 사건이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 보육교사가 아이들이 낮잠을 자지 않는다며 일정 기간 수면제를 먹여 동시에 재운 사건이었다. 이후 아이를 흔들며 때리는 건 기본이 됐고, 엄동설한에 아이를 알몸으로 문밖으로 내쫓는가 하면, 가위를 던지고 바늘로 찔러 고문하는 등 날로 흉포화하고 있다. 심지어 목숨을 빼앗는 극단적인 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사고에 정부는 그때마다 땜질식 대책을 내놓느라 부산을 떨기 바빴다. 그런데 나아진 것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며칠 전 경기도와 서울에서 어른들의 잘못으로 영유아가 잇달아 숨지고 다쳤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노(大怒) 했다. 하루가 멀다고 전해지는 끔찍한 소식에 부모들의 심정은 불안 그 자체다.
민간, 가정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학대와 안전사고 빈도가 높다. 자격과 교육 강도를 높이고, 업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고졸 이상의 학력자가 1년 반 정도 관련 교과목을 이수만 하면 이뤄진다. 재교육도 2년에 한 번 비디오 시청과 집합 교육이 전부다. 자격기준을 한참 높이고, 교육을 상시적으로 해야 한다.
그에 앞서 획기적인 처우와 노동환경 개선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우선 보육교사들의 고용불안을 없애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또 원장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고용구조 문제도 수술해야 한다. 이를 빼놓고는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민간 어린이집은 정부의 인건비 지원이 없다보니 국공립 교사보다 50만원 이상 임금에서 차이를 보인다. 근로환경 역시 열악하다. 정부가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해 지난 1일부터 시행한 '보육교사 휴게시간 지침'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근로시간 휴게시간 변경 가능 특례업종이었던 보육교사 직군이 이번 달부터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언뜻 보육교사들의 휴게시간을 배려한 듯 보이지만, 보육교사들에게는 그 시간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라는 말로 달갑지 않다. 결국 보육교사가 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기준법만 현실성 없이 바뀐 것이다.

또 학교 교사들 점심시간은 근로시간이고, 어린이집 보육교사 점심시간은 휴게시간으로 갈라놓은 것도 문제다. 그 시간 임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으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일부이기 하지만, 끊이지 않는 몰지각한 원장들의 보조금 유용·횡령 등의 비리도 근절해야 한다. 지극히 국한된 일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몇 달 대기하다 힘들게 어린이집에 보낸 부모들은 이런 원장을 알면서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이런 못된 원장들을 뿌리 뽑을 특단의 대책도 세워야 한다.
경기도가 지난해 도내 어린이집 1만2120곳 중 9601곳을 점검한 결과 아동학대와 보조금 부정수급을 저지르는 등 1047곳(10.9%)에서 1627건의 각종 위법을 확인했다. 2016년도 1230곳, 1689건 적발과 견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부 각 부처는 2006년 이후 13년 동안 저출산 관련 예산을 무려 153조 쏟아 부었다. 상당 부분이 보육 명목에 쓰였지만 보육교사 처우는 달라진 게 없다. 보육교사들의 처우개선과 노동환경을 손대지 않고서는, 아이들 돌봄보다 원장 눈치 보고, 각종 제출문서를 만드는 것을 우선시하는 지금의 구조체계를 뜯어 고칠 수 없다.

보육교사의 '분노, 우울, 직무 스트레스 등' 정서 관리 또한 중요하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대폭 확대하는 일도 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부모들이 청와대에 몰려가 '보육교사 휴게시간 지침 강행 규탄 기자회견'을 했는지 곱씹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