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옛 러시아 전함 돈스코이호가 다시 화제다. 울릉도 저동 434m 바다밑에서 113년간 잠들어 있었던 선체는 맞는 것 같다. 그러나 150조원 보물선 얘기는 아직 한쪽만의 얘기다. 이미 '투자 주의보'까지 내려져 있다.
▶돈스코이호 비극의 전말은 인천 제물포항에서 시작된다. 제국주의적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 1904년 2월9일 일본 해군 우류 전투대가 인천항을 급습한다. 만주와 조선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러일전쟁의 첫 포화이다. 러시아 바랴크함 등은 만신창이가 된 채 자폭한다. 인천시립박물관 창고에 있던 바랴크함 깃발은 훗날 러시아 애국심의 표상이 된다.
▶일본 연합함대는 기습작전으로 러시아 극동함대를 뤼순항내에 가둬버린다. 다음 일본 육군의 노기군이 뤼순항 뒤편 203고지를 점령한다. 막강했던 러시아 극동함대는 이 고지에서 날아오는 포탄에 모조리 수장돼 버린다. 이제 극동 해역에서 러시아 함정은 흔적도 없어졌다.
▶화가 치민 러시아는 무리수에 명운을 건다. 발틱함대의 극동 원정이다. 1904년 10월15일 북해의 러시아 군항을 출항했다.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9개월간 3만7000㎞를 달리고서야 전장에 닿았다. 일본 해군은 진해만에 진을 치고서 발틱함대를 기다렸다. 1905년 5월27일 오후 2시 쓰시마 해협에서 양측의 함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불과 두어시간만에 승패가 드러났다. 발틱함대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는 전투 초반에 부상을 당해 이튿날 포로로 잡힌다. 일본은 밤에도 어뢰공격으로 러시아 함대들을 하나하나 격침시켰다. 전함 6척을 포함, 50여척이 격침되고 경순양함 1척과 구축함 2척만 도주에 성공한다. 일본의 피해는 어뢰정 3척이 전부였다.
▶첫날 전장에서 살아남은 장갑 순양함 돈스코이(6200t)호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주하는 길이었다. 뒤를 쫓는 일본 순양함 4척과 교전을 거듭하면서 울릉도까지 이르렀다. 29일 새벽 결국 힘이 다해 울릉도에 스스로 부딪쳐 버린다. 승무원들이 상륙한 뒤 가라앉혀 버린 최후의 발틱함대이다.
▶한 세기를 넘어 심해에 잠들어 있던 돈스코이다. 그 배가 역사의 유령인양 홀연히 바다를 뚫고 다가와 있다. 그 시절 조선은 해군은 커녕 통통배 한 척 없었다. 일본 연합함대는 결전을 위해 진해만을 나서며 대본영에 전문을 보낸다. '오늘 날씨 청량하나 파도 높음'. 오늘 대한민국을 둘러싼 바다의 파도와 날씨는 과연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