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 이운형 인천대 디자인학부 교수
[목요논단] 이운형 인천대 디자인학부 교수
  • 인천일보
  • 승인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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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기업의 근무환경이 여러가지로 달라지고 있다. 야근과 주말근무, 회식으로 상징되던 한국의 구시대적 기업문화가 전환점을 맞이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필자가 기업에서 일하던 90년대 말, 한국의 기업문화는 대체로 80년대 개발도상국의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기업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을 때여서 야근과 주말근무가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부서 회식 역시 말단사원이 불참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삼겹살에 소주로 시작하는 한국 기업의 회식문화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필자에게 곤욕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은 좋았지만 술을 못 마시는 직원들에게도 폭탄주를 강권하면서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시고 2차 3차를 달리는 바람에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근처 사우나 같은 데서 잠시 눈을 붙이고 바로 출근하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주5일 근무제 도입 이전이라 금요일 저녁에 회식 후 토요일 오전에 출근하기도 했는데, 그럴 경우 토요일 근무는 숙취로 인해 하는둥 마는둥 하다가 집에 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업무를 다 못 끝낼 경우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주말에도 회사를 나오는 모습이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보였는지 같이 일요일에 출근한 부서장에게 종종 칭찬도 들었다. 야근 역시 마찬가지인데,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 먼저 퇴근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서장부터 시작해서 직급 순서대로 차례대로 퇴근해야 집에 갈 수 있어서 업무가 없는데도 원치 않는 강제 야근으로 인해 정시퇴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초과근로수당 같은 것은 신청할 엄두도 못 냈고(사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연장근무는 그냥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20여년 전 필자가 기업에서 일하던 시절의 기억이다. 하지만 지금도 이러한 기업문화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에도 프랑스 경제신문에서 한국에서는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늦게까지 일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보도할 정도니까. OECD국가 중 최장 근로시간 1, 2위를 다투는 햇수가 10년을 넘어가는 한국은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근무시간이 긴 나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과 근면함이 오늘날 한국의 경제가 이만큼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기는 하다.

그런데 이런 긴 근무시간이 생산성을 보장해주는 것일까. 근무시간이 길다고 해서 무조건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35시간이지만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한국의 두 배에 가깝다. 그만큼 한국 기업의 생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당연히 야근을 해야만 하는 환경에서는 업무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긴 근무시간과 주말근무로 인해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고 시달린 직장인들에게서는 창의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창의성은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짠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업무 외에 충분한 휴식과 자기시간을 가지고 취미생활이나 단체활동 등의 새로운 경험을 하며,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살아갈 때 최대로 발휘될 수 있다. 창의성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도 경영에만 몰두했던 것이 아니고 철학과 인문학,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을 통해 영감을 받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곤 했다.

창의성은 미래 사회에서 핵심 능력으로 꼽힌다. 앞으로는 4차산업혁명 시대이며 미래의 인재들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창의성이 첫 번째로 꼽히고 있다. 미래 시대에는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해왔었던, 이미 존재하는 기존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여 1등을 차지하는 것보다도 여러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연결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적 활동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게 된다.
창의성은 획일화된 기업문화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아직 과거의 기업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려면 소득감소 문제 해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간극 차이 조정 등 넘어야 할 산들이 많겠지만, 과거 노동 중심의 기업에서 창의성을 중시하는 미래 기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할 변화이다.

15년 전 주 5일 근무제 도입이 우리 사회에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듯이, 주 52시간 근무제 역시 성공적으로 정착되어 기업과 직원이 모두 행복해지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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