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철 문화체육부장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1987년부터 2017년까지 30년 동안 쓴 90편의 칼럼을 묶어 <파국론에 등을 돌리고>를 최근 출간했다. 최 교수는 '지루한 성공'이란 급격한 변화가 아닌, 개량을 끊임없이 축적하면서 차근차근 이상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이 그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이끌어낸 '지루한 성공'의 대표적인 전형이라고 밝혔다. 이번 성공을 바탕으로 '남북연합' 상태를 만들어 나아가는 게 시대적 사명이고 남북연합의 핵심은 문화적 동질성의 회복이라고도 강조했다.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 문화로 이어지거나 또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문화로 형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어렵고 복잡다단한 사건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준비해야 문화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고, 비로소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류 문화'다. 한류는 한국의 대중문화, 즉 드라마, K-팝, 영화, 게임 등의 문화콘텐츠가 중국, 일본, 동남아 지역에서 유행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1993년 중국에 드라마 '질투'가 처음 수출됐고, 이후 '사랑이 뭐길래', '대장금' 등이 인기를 얻었으며, 일본에선 '겨울연가'가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H.O.T서부터 많은 아이돌그룹과 걸그룹에 이어 싸이와 방탄소년단까지 K-팝의 한류 영향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넓어지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확장됐고, 콘텐츠도 대중문화를 넘어 순수문화예술, 음식, 한글 등으로 확대된다.

세계적인 유아용 TV애니메이션인 '뽀롱뽀롱 뽀로로'도 있다. '어린이들의 우상'이라 해서 '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뽀로로는 동물 캐릭터들이 주는 친근감과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내용을 담아 2003년 첫 전파를 탄 이래 세계 70~80개 나라에서 방송된다.
프랑스에선 57%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아동 시청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한류 문화와 뽀로로는 수조원의 경제유발 효과 말고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한국의 이미지 개선 효과를 창출한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류 문화가 성공하기까지 수많은 좌절과 실패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뽀로로'를 제작한 김일호 오콘 대표는 "뽀로로가 성공하기까지 10여년간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결과물을 내놓아야 지원해 준다는, 어이없는 상황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1995년 인터넷 서점을 시작으로 음반, 장난감, 패션 등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해 지금은 30개 이상 상품 카테고리를 다루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CEO 제프 베저스는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큰 성공은 수십 번의 실패가 쌓인 뒤에야 온다"면서 "CEO로서 내 일 중 하나는 직원들에게 실패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고, 실패가 아마존의 '문화'로 작용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문화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공유·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한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해 언어·풍습·종교·학문·예술·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라고 돼 있다.
민선7기 박남춘 인천시장이 이끄는 '박남춘호'가 새로운 4년을 향해 출범했다. 박 시장은 지난달 13일 당선 소감에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서 인천은 우리나라의 경제·사회분야와 함께 문화의 중심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이 '문화 중심도시 인천'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방향설정을 하고 어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하지만 문화란 형식에 그치거나 교과서적으로 배운다고 되지 않으며 오히려 상황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먼저 생각하기를 바란다. 특히 기형적이라고 할 만큼 관에 집중화된 우리 사회에서 '인천문화'를 이루기 위해 '지루한 성공'을 향한 첫 발을 내디딘 뒤에는 '지루한 실패'도 마다않는 자세부터 갖추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