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사회부기자
정부가 바라보는 지방자치는 늘 그랬다. 잘하면 둘째, 못하면 부록에도 빠지곤 했다. 지난 21일 정부가 발표한 자치경찰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담긴 조건 중 하나에 불과했고, 설익은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나씩 따져보자.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명한 합의문을 보면, 자치경찰체는 '5항 자치경찰제에 관하여' 항목에 담겨 있다. 양 장관은 자치경찰제를 수사권 조정과 함께 추진하고, 2019년 시범실시·대통령 임기 내 전국 실시에 합의했다.

굳이 자치경찰제를 수사권 조정과 함께 추진하는 까닭은 검찰이 내건 조건 때문이다. 대검찰청은 청와대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권한을 나누는 방식으로 경찰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대통령 임기 내에 실시하자는 조항은 정치적으로 동력이 있을 때 마무리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모두 정부, 검찰, 경찰의 사정을 감안한 조항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정 따위는 고려되지 않았다.

자치경찰제 관련 계획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합의문에 따라 자치경찰위원회 설치계획과 사무권한·인력·조직 이관계획을 세워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의견을 제기할 구석도 없는 구조다. 구체적인 결정을 내릴 자치분권위도 구성을 보면 대학교 교수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그들은 '제도 전문가'일 뿐, 지방자치를 피부로 느끼며 자양분으로 살아가는 이들로 보기 어렵다.
합의사항에 담긴 자치경찰의 사무범위도 한심할 뿐이다. 원문 그대로 옮기면 '비수사 분야(지역 생활안전·여성청소년·경비·교통 등) 및 수사 분야의 사무 권한'이다. '비수사'가 앞에, '수사'가 뒤에 위치했다. 자치경찰에 어떤 수사권한을 줄지 구체적인 내용도 빠져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발언은 정부가 가진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조 수석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한 뒤 일문일답을 통해 "수사권 전체를 자치경찰이 다 갖지 않는다. 치안, 민생, 여성, 교통 문제에 대한 권한만 가질 것이다"라며 "우리나라는 연방분권국가가 아니기에 모든 수사권을 경상도, 전라도에 떼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자치경찰은 단속원이나 방범대에 머물라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보정권도, 보수정권도 그랬다. 지방자치는 뒷전이다. 자치경찰제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조건'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도 황당하고, 주인공이어야 할 지방자치단체가 아예 안 보인다는 점도 황당하다. '자치경찰제 시행에 따라 재정을 얼마나 어떻게 이관할 것인가',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할 방안은 무엇인가' 따위의 논의를 할 것도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