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6·13 지방선거 날, 출구조사 방송은 가히 충격이었다. 지지 후보를 떠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 했다. '노아의 방주' 홍수를 떠올리게 했다. 과연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한순간에 뒤집기도 하는 매우 난폭한 물길이다. 여당으로서는 모태인 한민당 출범(1945년) 이래의 첫 전승(全勝)이었다.
▶일본은 16세기 거의 100년을 전국시대로 살았다. 지방 제후들간의 끝없는 싸움을 '힘에는 힘으로'식으로 마감시킨 시대다. 이 봉건제와 전국시대가 '근대화의 우등생=일본'을 낳았다는 궤변도 한시절을 풍미했다. 즉 일본이 유럽과 똑같은 역사발전 단계를 밟아 왔다는 합리화다. 아무튼 자고 나면 사방에서 전쟁을 치르는 살기등등한 시대였다.
▶프로야구 리그전처럼 전국시대는 스타 무장(武將)들을 여럿 배출했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등은 우승·준우승 반열까지 올라 본 스타들이다. 도중에 몰락했지만 '가이(甲斐)의 호랑이'라 불렸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도 군신(軍神)급으로 분류된다. 특히 호적수인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과 싸움들은 용쟁호투로 불렸다.
▶'무릇 승리는 5할의 승리를 최상으로 삼고, 7할을 중(中), 10할 완승을 하(下)로 삼는다. 5할은 용기를 낳고, 7할은 게으름을 낳고, 10할은 교만을 낳기 때문이다. 10할의 승리 뒤에는 10할의 패배가 따르지만, 5할만 이기면 질 때도 5할로 수습이 된다.' 일생을 전장에서 살았던 다케다 신겐의 싸움 좌우명이다.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를 어찌 할(割)까지 잴까마는 핵심은 '교만'이다. 전쟁도, 바둑도 10할 완승에는 교만이 따른다. 수천년의 역사가 되풀이 경고했지만, 인간은 이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해왔다.
▶"겸허한 자세로 주민을 받들 것" "준엄한 선택 앞에 겸허히 자성할 것" 국민의 선택이 확인되자 이긴 쪽도 패한 쪽도 '겸허' 깃발을 내걸었다. 그러나 속마음도 완전히 그런지는 아직 모르겠다. 벌써 SNS상으로는 속 마음이 들켜버린 '교만'과 '네 탓' 등이 돌아다닌다. '이제 부터는 이길 일만 남았다.' 패배한 쪽에서도 자성보다는 '2년 후에는 어디어디에서'부터 한다.
▶여당은 신겐이 하(下)로 친 10할 완승을 거뒀다. 교만을 낳는다는 그 승리다. 교만만 피한다면 요즘 떠도는 '수십년 집권'인들 그리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