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장후보스토리] 수형생활 겪은 김응호, 약자 향한 '뚝심' 다지다
[인천시장후보스토리] 수형생활 겪은 김응호, 약자 향한 '뚝심' 다지다
  • 곽안나
  • 승인 2018.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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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선후배·선생님 설득
19살에 핵 폐기장 건설 막아
출소 후 각종 시민운동 계속
▲ 1990년 서산 서령고등학교 3학년 학생회장 시절의 김응호 후보(위쪽 사진). 2000년대 초반 김 후보가 부평 미군기지 반환 운동을 이어가던 모습. /사진제공=김응호 후보 선대위
"시민의 힘으로 역동적인 인천 정권교체를 만들겠습니다."

1972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정의당 김응호 인천시장 후보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반장과 학생회장을 도맡았다. 우수한 성적은 물론 동급생들과 선후배들로부터 '신뢰 가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했던 친구 옆에는 늘 김응호 후보가 함께했다. 초·중학교 9년간 발걸음을 맞추며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쌓았다.

서산 서령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는 대입을 앞둔 고3 선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합격 기원 선물을 들고 일일이 인사를 다녔다. 이전에는 없던 문화였다.

이듬해 학생회장이 되었을 때 충남 태안군 안면도 핵 폐기장 문제가 지역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핵폐기물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안면도 일대에 핵 폐기장 시설을 건설한다는 소식이었다. 19살에 불과했던 그였지만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설득해 연일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결국 지역 주민들과 핵 폐기장 건설을 막아냈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가 유년시절을 통해 얻은 귀한 교훈이었다.

김 후보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 것은 1991년 인천대학교에 입학하면서다. 당시 명지대학교에서 강경대 열사가 학원자주화 투쟁 중 백골단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소식을 듣게 된 김 후보는 자신과 동급생이었던 강경대 열사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강경대 열사의 장례식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라고 다짐한 김 후보는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1995년 인천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며 인천지역 학생운동을 이끌던 그는 당시 인천의 최대 현안이었던 굴업도 핵 폐기장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시민들과 힘을 모아 핵 폐기장은 막아냈지만 반대 운동과 학생운동에 선두에 섰다는 이유로 3년 4개월의 기나긴 수형생활을 하게 된다.

모진 수형생활을 겪고 난 김 후보는 인천에 단단하게 뿌리내린다. 시민의 곁에서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간다.

문학산 패트리어트 미사일기지 배치 반대 운동, 계양산 골프장 저지 운동, 부평미군기지 반환운동과 이후 환경오염 정화를 위한 활동까지 시민들의 쾌적한 환경과 평화로운 인천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지역 곳곳을 누빈다.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에 맞서 대형마트 규제 운동, 대형슈퍼마켓 저지 운동, 카드수수료 인하, 소상공인 살리기 운동처럼 인천시민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한 활동의 중심에도 그가 섰다.

좋은 어린이집 만들기, 안전한 학교급식 만들기 등 아이키우기 좋은 인천을 만들기 위한 활동과 장애인의 인권 지키기, 인천 여성영화제 개최를 위한 활동까지 시민들과 함께 숨 쉬며 인천시민의 힘으로 시민운동 승리의 역사를 써왔다.

김응호 후보는 "인천시민의 절망은 나의 절망이었고, 시민의 분노가 나의 분노였다. 비가 오면 함께 비를 맞는 사람으로 지냈다"면서 "약 30년간 인천에 발 디디고 시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시민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청년, 여성, 노동자 모두를 위한 평등도시 인천을 김응호가 만들겠다. 인천을 인천 시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곽안나 기자 lucete237@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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