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없던 해운항만청 지원
노무현 장관 만나 철학 공유
'폐족' 몰렸을때도 절치부심
▲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경북 봉화로 내려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 환담을 나누는 박남춘 인천시장 후보(위쪽사진). 박 후보는 1981년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사진제공=박남춘후보 선대위
"제가 태어난 곳이 항구도시 인천입니다. 인천시장이 아니라면 고향인천의 바다를 관리하는 해운항만청장이 제 꿈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인천시장 후보가 1981년 행정고시 합격 이후 비인기 부서인 해운항만청을 지원하면서 밝힌 이유다.

항구도시 인천에서 나고 자란 박 후보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에 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바다행정을 다루는 공직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됐다. 약 20여년간 해운항만청·해수부 공무원 생활을 통해 해양·항만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 박 후보에게 있어 이 시기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바로 해수부 공무원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해수부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노 장관과의 인연은 이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인사수석 비서관(차관급)까지 이어졌다. 이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의 철학을 공유했고, 이를 실현할 시스템을 배우고 경험했다고 박 후보는 회고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이 맺어져 향후 '친문 그룹' 핵심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도 이 시기였다.

참여정부 이후 그는 정계에 입문했지만 첫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바닷가를 중심으로 둔 중·동·옹진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낙천하는 아픔을 맛봤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다음 해인 2009년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이어졌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참모를 중심으로 한 친노(친노무현)계는 사실상 '폐족'으로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뼈노'라 지칭할 만큼 '정치적 스승'으로 여겼던 노 전 대통령 철학과 참여정부 시절 국정 경험을 토대로 절치부심(切齒腐心) 했다. 그 결과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전통적인 보수 텃밭이었던 인천 '남동갑' 지역구에 입성, 재선까지 역임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박 후보는 국회의원 시절 안전행정위원으로서 활동하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각종 예산을 확보하는 등 국민 안전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4년 의정 종합평가에서 7위, 인천지역 1위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 후 무엇보다 항상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자 노력했고, 누구보다 많이 인천과 남동구의 내일을 고민했다"며 "국회의원의 정열과 노력, 그리고 성과는 인천시장 후보로써의 경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인천시장에 대한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재선 국회의원 시절에는 당 최고위원과 인천시당위원장을 역임하며 '힘 있는, 준비된 시장'으로서의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박 후보는 인천시장이 될 경우 자신의 다양한 정치·행정 경험 및 중앙정부와의 소통·협력을 통해 인천특별시대를 연다는 방침이다.

박 후보는 "인천 토박이자, 공직 경험이 있고 대통령과 가까운 제가 인천시장으로서 인천 발전을 견인해 나갈 수 있는 최적임자"라며 "문재인 정부와 발맞춰 인천 특별시대를 열고 시민들께 '인천특별시민'이라는 자긍심을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신상학 기자 jshin0205@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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