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콘서트챔버가 첫 창단공연을 올린 낙원여인숙(아래). 1970년대 문을 연 이 곳은 2010년 경 폐업했다. 이승묵 대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쳐간 작은 공간을 위해 음악을 연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인천콘서트챔버

지휘자가 연주자들 앞에 서서 마법사의 지팡이 같은 지휘봉을 휘두르면 음악은 시작된다. 악기와 신이 내린 목소리는 인간의 희로애락 감정을 리듬에 맞춰 표현하고 소통한다.

음악이 좋았다. 10대 때에 처음 드럼을 배웠다. 대학에서 관현악을 전공, 오케스트라 팀파니 연주자로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을 걷는다. 지휘자 과정을 사사받고 나서 자신 만의 음악을 하고 싶었다. 10대 때 드럼을 좋아하던 아이는 30대 성인이 돼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치는 서양음악 전문연주 단체를 창단한다.

'인천콘서트챔버'의 이승묵(34) 대표. 그는 음악단체 대표이며, 지휘자이면서 직업 연주자다. 그러나 단순한 기능적 연주자가 아니라, 인천을 음악으로 발굴하는 '예술가 이승묵'이다.

이 대표가 이끌고 있는 인천 콘서트 챔버는 인천을 기반으로 서양 바로크 음악과 근대 국내 유입곡을 주로 연주하는 10인조 공연 단체다. 근대음악으로 인천의 근대역사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객석의 관객과 무대의 연주자가 분리된 공연장보다는 서로 호흡할 수 있는 공간에서 소통하길 원한다. 일반적인 연주회를 위한 전용극장이 아닌 버려진 여인숙과 옛 양조장 건물, 얼음창고 등 근대건축물을 개조한 장소에서 지역과 음악을 접목시킨 작업을 선보인다. 또한 지역 미술 작가들과 협업해 다양한 기획과 작품을 만들어 근대 개항의 발상지 인천이 가진 의미를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또다른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30대에 공연단체 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거기에 '유쾌한 반란'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음악세계가 궁금하다. 혹시 그가 가장 정성을 들인 작품은 '자신의 삶'이 아니었을까. 오선지 위에서 팀파니 소리처럼 들려오는 '뮤지션 이승묵'의 클래식한 삶의 여정을 들어본다.

# 공간을 위한 음악, 그것 또한 소통

"음악을 통해 사람들은 울고 웃으며 안식과 평화를 얻죠. 그렇다면 그 안식과 평화를 공간에 줄 수 없을까. 특정인을 위한 헌정 음악이 아닌, 작은 공간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인천콘서트챔버의 첫 기획연주가 탄생했습니다."

인천콘서트챔버는 2015년 첫 창단공연으로 '낙원 FM콘서트'(낙원여인숙)를 무대에 올렸다. 인천시 남구 숭의동 어느 골목에 있는 낙원여인숙, 1970년대 영업을 시작, 40년만에 폐업한 허름한 여인숙이다.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공간 자체에게 선사하는 음악무대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현악4중주 편성으로 여인숙 내 객실에서 연주와 곡의 해설을 진행하면, 관객은 다른 객실에 앉아 전달되는 소리에만 집중하는 형식의 콘서트를 진행했다.

지난해까지 이 같은 형식의 연주회를 14차례 가졌다. 인천, 바로크 음악에 물들다(트라이볼), 배다리에 울리는 플렌치 클래식(스페이스 빔), 빙고탱고(아카이브카페빙고), 원더풀동인천(팟알), 태양왕루이 14세의 음악(원인재) 등이다. 올해에는 오는 16일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원더풀동인천(두강이 만난 바다, 인천 그곳의 근대음악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그가 특별한 형식의 연주회를 갖는 이유는 그의 '작품 세계 구현'과 '장소와 음악을 활용한 관객 소통'이다.

# 클래식의 시작은 '견적서'로부터

"중학교에 진학할 때 어머니가 기타나 드럼을 배우면 멋있는 중학생이 될 수 있다면서, 취미로 배워보라고 권유했죠. 그해 첫눈 오던 날, 구월동에 있는 드럼학원에 등록하고 처음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활동하던 중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연주를 접하면서 드럼보다 클래식 타악기, 팀파니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6년동안 클래식 타악기를 배우는데 필요한 악기 구입비와 레슨비를 뽑은 견적서(?)를 부모님께 제시했다.

"물론 처음에는 음악은 취미로 하라며 거절했죠. 일주일쯤 지나서 아버지가 '진짜 해보고 싶냐. 그럼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면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음악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고등학교 때는 락밴드 부 '아마란스-영원히 지지않는 꽃'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클래식은 개인교습을 통해 배웠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락이냐, 클래식이냐'는 갈림길에 섰다. 락 밴드의 드럼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수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에 진학했다.

# '그림판'으로 음표를 한땀한땀 …

2011년 대학졸업 후 민간단체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파트 일반단원과 국공립 오케스트라 객원 단원으로 동시에 생활했다. 객원 연주자로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다보니 어느새 자동차 계기판은 51만㎞를 기록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생활을 위해 초·중·고 방과 후 수업과 문화센터에서 취미생을 위한 드럼을 가르쳤다. 아이들의 동요, 그리고 어르신의 트로트 음악을 가르쳤는데, 음악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클래식 무대를 감상하러 와 공연 내내 잠을 자다가 공연 후 박수를 치고 돌아가는 관객보다 진실돼 보였다.

동요는 동요답게, 트로트는 트로트답게 연주하고 수업하는 것. 즉, 장르엔 귀천이 없고 본래 음악을 그 음악스럽게 연주하고 표현하는 것이 진정 '클래식의 정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그들에게 보다 정성스럽게 음악을 전하고 싶었던 그는 컴퓨터로 음표를 하나씩 그려 악보를 만들었다. 악보제작 프로그램을 다루는 게 서툴러 30분이면 될 작업을 3시간 이상 고생하며 수업물을 준비했다. 그 준비물을 바탕으로 기존 교본시장엔 없던 두 종류 교본을 출간했다.

"저의 파트에서는 '드럼교본 냈다'면 웃어요. '아이들 레슨할려고 만든거잖아'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진짜로 애틋한 책입니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을 넘나들면서 수업을 하던 그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음악이 진짜음악이라는 걸 깨달았다. 취미생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며 오히려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음악은 값지고 소중하며 그 음악이 '그 음악스럽게' 연주된다면 그것이 '클래식의 정신'이라고 ….

그는 클래식계에서 흔히 말하는 로얄패밀리가 아니다. 직업 음악가 사이에는 '마이클 잭슨이 살아 돌아와도 안되는 건 안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실력' 하나만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

학연과 지연, 연줄은 없었지만 그 벽을 넘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은 물론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장거리 객원 연주를 떠날 때는 연미복이 걸린 차 안에서 눈을 붙이면서 마치 집시 음악가 같은 생활을 하며 공연 경험을 쌓았다.

그는 '이승묵 스러운' 음악을 무대에도 녹여내고 싶었다. 객석에서 따분하게 무대가 끝내기만을 기다리는 클래식이 아닌, 진정 소통 가능한 무대를 만들고 싶어 새로운 스승을 찾아 나섰다.

"저의 음악세계를 성숙시키기위해 이탈리아 지휘자 겸 음악감독 실바노 코르시(Silvano Corsi)를 만나 사사했죠. 그 후 애착하는 서양 바로크 음악과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의 근대 이야기를 다룬 음악 무대를 차츰차츰 준비했습니다."

# 어머니 모교에서 또다시 반란

2015년 '인천콘서트챔버'가 탄생했다. 이때부터 그의 음악적 취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연주자'가 아닌 '음악가'로 다시 태어났다. '다른 악기와 잘 호흡하는 기능적인 연주를 잘하는 연주자'가 아니라 인천을 음악으로 발굴하고, 음악으로 생각을 구현하는 예술가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이 대표는 "평범한 맞벌이 집안이었는데도 부모님이 '즐겁게 해라, 너의 낭만을 찾아라' 라며 음악가의 길을 지지하고 지원해 줬기에 오늘의 '뮤지션 이승묵'으로 꽃피울 수 있었다"면서 "올해 어머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어렸을 때 여름마다 놀러갔었던 어머니 고향, 섬마을(전남 신안 상태도)에 가서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 모교를 배경 무대로 단편 음악 다큐('당신의 발자취')를 제작할 계획이다.

"8월15일 인천을 출발, 어머니 고향에서 연주를 마치고 돌아오는 전 과정을 캠코더로 촬영해 30분짜리 다큐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폐교가 된 초등학교에서 어머니가 가족 회식날이면 부르곤 한 노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를 클래식하게 연주하는 장면 등을 찍는거죠."

이 대표는 이렇게 제작한 음악 다큐 '당신의 발자취'를 관련 주제의 무대에서 일반관객과 가족들에게 상영하려고 한다. "힘들게 뒷바라지 해 주신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답해 드리려는 건데, 어머니가 감개무량해 하지 않을까요."

이 대표는 공연 때마다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모습을 파노라마로 촬영한 사진을 묶은 사진집 '무대에서 바라보다'를 올해 출간할 예정이다. 공연장의 객석에서 연주자를 바라보는 모습이 아닌, 연주자의 입장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시야를 담은 작은 사진집이다.

불꽃놀이 같은 공연이 끝나면, 빈 객석에는 사그라진 여운만 남는다. 그래서 늘 공연 내용을 사진으로 남겨 책으로 묶어 두고두고 그 감동의 아쉬움을 기억하려는 것이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