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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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현실을 벗어나 사이버공간으로 진입한다. 일상은 거의 사이버공간에 기대 돌아간다. 노트북 암호입력은 하루를 여는 의식이다. 지루한 밥벌이의 고단함도 사이버 공간에서 털어낸다. 현실에 잇댄 건 몸뚱이 뿐, 일상은 디지털 세계에 목맨지 오래다.

최근 들어 사이버 공간 진입이 수월찮다. 입구 앞에서 매번 쩔쩔맨다. 날로 복잡해지는 패스워드 때문. 드나들 곳 많아지며 외울 것도 많아졌다. 게다가 네 자리였던 패스워드는 요즘 8자리를 웃돈다. 대문자, 특수문자 등도 보태야 한다. 이러니 패스워드 찾기로 보내는 시간이 꽤 된다.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하는 일이 삼시세끼보다 중한 일이 됐다.

딱한 상황에서 만난 생체인식(Biometrics) 기술은 반가웠다. 내 몸으로 나를 알아주니 고마울 뿐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손가락이나 눈동자만 보여주면 문 열리니 신세계다.

‘패스워드 중후군’이 만연하기 때문인지, 관련 기술도 날로 진화한다. 지문이나 망막에 더 해 정맥, 목소리 등 ‘온 몸이 패스워드’ 인 시대다.

하지만 모든 편익에 공짜는 없는 법. 생체인식 기술 편의성 뒤에도 높은 위험성이 숨어있나 보다. 위험성을 경고하는 소식이 빈번하다. 핵심은 한 번 뚫리면 ‘대체 불가’라는 것. 이른바 지문도난도 잦은데, 이후 지문은 ‘재발급’ 불가다. 물론 여타 ‘생체’도 마찬가지.

기술 안전성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비교적 ‘신상’이니 오늘 안전할 수 있겠다만, 내일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순 없겠다. 기술 진보는 늘 천사와 악마란 양 날개를 달고 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패스워드 되는 상황은 이미 진행형이다. 사이버 공간 뿐 아니다. 상당수 공공기관 출입문에도 이미 생체인식 기술이 적용돼있다. 저마다 타고난 유전적 형질을 디지털 코드화 해 드러내 보임으로 내가 나란 걸 인정받아야 하는 시대인 것.

이쯤 되면 머잖아 몸의 특정 부위에 디지털 코드를 새겨 넣는 영화 같은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보안성이나 편의성의 ‘끝판왕’이니 말이다. 그럴 일 없길 바라지만, 그런 상황 벌어진다면 끙끙대며 8자리 패스워드 두드리던 시절을 무척 그리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