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실토실 푸른 열매가 매달린/동백나무 그늘에 앉아서/등대수의 늙은 아버지는/졸고 있었다/발아래 낭떠러지 암벽 따라 하얀/비말의 선조(線條)/그 아름다움도/파도소리도/돌같이 굳어버린/늙은 외로움을/달래주지 못한다…”-정한모의 `등대가 있는 고도""이다.
 등대는 밤바다에 불빛을 밝혀 항해하는 선박의 항로를 안내하는 시설이다. 밤시간 자유공원에라도 오르면 서남쪽으로 깜박거림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팔미도 등대에서 보내는 불빛으로 등대마다 불빛에는 고유 사이클이 있어 마도로스는 불빛만 보아서도 어느 나라 어느 곳의 등대인지 알 수가 있다.
 역사상 등대가 처음 등장한 것은 BC300년경 그리스의 루카스 등대이다. 그러나 규모로서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할로스이다. BC280년에 건설되었다는 이 등대는 고대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의 기록에 의하면 높이 180m로 낮에는 거대한 동경으로 빛을 반사, 밤엔 불을 뿜어 뱃길을 인도했다고 한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오늘과 같은 근대적 구조가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1903년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 등대가 시초이다. 초대 선교사이던 알렌도 시베리아 여행길에 제물포항을 떠날 때 처음으로 휘황한 불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고 그의 그해 6월3일자 일기에 적고있다. 한편 경북의 장기갑 등대도 그해에 세워지는데 주민들 반발이 컸다고 전해진다. 즉 우리나라를 지도로 볼 때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데 그곳에 불을 켜면 호랑이가 뜨거워 꼬리를 흔드느라 등대도 무너져 불바다가 되고 나라가 고통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항도 인천의 상징은 등대이다. 따라서 인천의 조형물을 공모라도 한다면 단연 등대를 주제로 함이 압도적이겠다. 그것은 앞바다의 팔미도 등대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년전에는 연안부두에 등대 조형물을 건립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공포로 그치고 말았다.
 이제 다시 매년 6월1일을 등대의 날로 설정하리라 한다. 상징성도 좋으나 날로 혼탁해지는 사회를 밝힐 등대 구실은 누가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