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문점 선언은, 지루한 성공"
▲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10일 오후 6시30분 인천아트플랫폼 칠통마당에서 칼럼집 <파국론에 등을 돌리고>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사진제공=서은미 사진작가
"언제부터인가 제 글에 '지루한 성공'이란 말이 슬그머니 들어왔어요.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급격한 변화가 아닌, 개량을 끝없이 축적하면서 차근차근 이상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가 '지루한 성공' 안에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1987년부터 2017년까지 30년 동안 중앙 및 지역 언론매체에 기고한 90편을 묶어 펴낸 칼럼집 <파국론에 등을 돌리고> 출판기념회를 10일 오후 6시30분 인천아트플랫폼 칠통마당에서 갖는다.

<파국론에 등을 돌리고>란 책 제목의 뜻에 대해 최 교수는 "혁명론이나 종말론은 모두 파국론과 비슷한 개념이에요. 파국론이란 말은 영국 노동당의 기초가 된 페이비언협회에 참여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의회라는 합법적인 공간 안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며 혁명론을 폐기하면서 사용했어요. 당시 '새로운 세상은 엄청난 파국을 통해 온다'며 바리케이드에서 공격하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은 혁명론자는 물론, 보수당 쪽에서도 엄청난 공격을 받은 페이비언협회가 '바리케이드에 등을 돌리고 영웅적인 패배보다 점진주의를 과감하게 선택한 것'에서 약간 응용해 제목을 지었지요"라고 밝혔다.

'지금은 야만의 시대를 직시할 때', '중형국가의 길', '정책판단의 황금잣대', '기득권층의 개혁부터' 등 1~4부까지는 우리 시대의 개혁과제에 대한 최 교수의 혜안이 담겨있다.

'비판적 지역주의로서의 인천학', '인천사람, 인천문화', '주민자치를 위하여' 등 5~7부는 고향인 인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물씬 풍기는 '인천론'이다.

하지만 지역문제를 고민하는 최 교수의 시각은 인천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지역에도 공부법의 일단을 제시한다. 특히 30년 동안 쓴 칼럼에서 일관되게 유지하는 논지는 '남북관계'와 '지방분권'이다.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 선언'은 지루한 성공의 전형이지요. 남과 북이 그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요. 대표적인 예가 6·25전쟁 때 '적화통일'이나 '북진통일'을 시도했는데 모두 실패했고 정전이후에도 주변 4강의 견제와 방해로 많은 사건을 치르며 보냈지요. 하지만 노태우정부 때 '남북기본합의서'를 시작으로 김대중정부의 '6·15공동선언'과 노무현정부의 '10·4남북공동선언' 등을 거쳐 이번 '판문점선언'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통일하면 한쪽이 흡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그런면에서 연합이란 용어가 무난하지 않을까해요.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공존하고 상생하다보면 나중에 후손들이 '한번 합쳐볼까'하는 생각이 들겠지요. '남북연합' 상태를 만들어나가는 것, 지금 우리한테 주어진 사명은 그것이라고 생각해요."

최 교수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 남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아 비약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인천시와 경기도 모두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통탄할 노릇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남북연합의 핵심이 문화적 동질성의 회복이에요. 그런 면에서 인천은 서해5도와 강화 교동도의 평화수역이 있고 경기는 비무장지대 개방이 기대되고 개성이 원래 경기도였잖아요. 분단으로 절단됐던 남북이 생활문화를 복원해야 해요. 특히 인천은 한반도의 '배꼽'같은 곳이라 남북을 연결하는데 핵심지역의 위치를 살리는 기회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해요."

최 교수는 20여권의 문학평론집을 낸 국문학자이자 평론가이다. 87년부터 쓴 '어지러이 흩어져 있던 잡문들'을 모아 칼럼집을 낸 계기와 혹시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도 소감을 밝혔다.

"87년에 일어난 '6월항쟁'은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한 한국민주주의의 새로운 기원을 열은 사건이에요. '6월항쟁'의 제한된 승리 직후 쓰기 시작한 칼럼의 기조가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지루한 성공'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면에서 진보나 보수를 떠나 파국론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 착실한 민주주의나 자치를 차근차근 밟아나가기를 당부하고 싶어요, 또 '기억은 미래에 관여하고 기억이 없으면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기억을 전수하고 겪었던 시간을 다시 해석함으로써 우리가 만들어갈 앞으로의 역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해요."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