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담당' 민어회 '해장 담당' 물회


옮기고 옮겨도 찾아오는 단골들 … '그 집'의 추천 메뉴는

●멍게 물회

구월 산호는 민어회와 해산물 요리 전문 한정식집이다. 그 중 손님들마다 유난히 맛있다고 말하는 게 바로 물회다. 물회는 원래 어부들이 어선에서 먹던 음식으로 국처럼 회를 먹기위해 고안된 방식인데 밥을 말아먹으면 속이 든든하고 그냥 물회만 먹어도 숙취해소에 좋다. 속초, 포항, 제주 등에 유명한 물회집이 많은데 이 집의 물회는 '산호 스타일'의 맛이 있다.

굴물회가 주로 나오지만 계절이나 해산물의 신선도에 따라 주재료가 바뀐다. 멍게물회는 손질한 멍게를 듬뿍 올리고 바지락을 더한 뒤 오이, 무, 쪽파, 풋고추 등을 채 썰어 넣어준다. 고춧가루, 간장, 설탕, 식초 등 갖은 양념에 배와 사과를 갈아 천연조미료로 맛을 더한 육수를 붓는데 독특하게 묵은지를 넣어서 자극적이지 않고 뒷맛이 개운하다.

●나물

 


'산호'라는 이름에 특별한 뜻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손님들이 많은데 사실은 기존 산호란 집을 인수해 계속 쓴 것이다. 이 대표는 산호란 이름을 보고 오는 손님들에게 산호초 같은 특별한 것을 대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나물을 캐러 다닌다. 더덕 새순, 오가피, 참취가 무침으로 한주먹씩 접시에 담겨 나왔는데 모두 제철 나물이라 신선하고 독특한 향과 맛이 입맛을 돋운다. '음식은 만드는 사람을 닮는다'는 말이 있듯이 구월 산호 음식을 보면 이 대표의 호인다운 기질과 섬세한 배려심이 그대로 묻어 있는 듯 하다.

●구이, 찜

 

▲ 먹태찜



민어회와 부레, 껍질 주변에 자리잡은 구이와 찜 역시 메인요리 못지 않다. 꼬득하게 말려 구운 장대는 살점을 손으로 두툼하게 찢어 쌀밥에 얹어 먹으면 딱 맞게 간이 되어 있고, 꼬득한 살점을 씹는 맛이 생물생선을 먹을 때와는 묘미가 다르다.

먹태는 찜으로 나와 젓가락을 부른다. 매콤한 고추장 양념에 파와 통깨를 듬뿍 뿌려 맛과 함께 눈요기도 더해준다. 산호에서 빠지지 않는 게 두부부침과 전이다. 농어를 어린아이 주먹만하게 썰어 부쳐낸 농어전을 양념 간장에 살짝 찍어 한입가득 넣으면 하얀 속살과 함께 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구이와 찜과는 또 다르다.

 

나물캐랴 봉사하랴, 쉬는 날이 더 바쁘네
자연산 나물 대접하고파 주말 산행… 공휴일엔 어르신 100명 점심 준비
 


 구월 산호의 이옥란 대표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전국 곳곳의 깊은 산을 찾아 떠난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의 높은 산도 마다 하지 않는다. 10여년 전부터 건강이 나빠져 시작한 등산이었지만, 사실 이 대표 산행의 진짜 이유는 산속에 숨어 자생하는 나물을 캐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산나물들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머릿 속에 소위 '꾼'들만 안다는 정보가 가득하다. 강원도 평창의 어느 산에는 어디쯤에 무슨 나물이 있고, 충북 단양의 깊은 계곡 옆에는 무슨 나물이 있는지 꿰뚫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가 산나물을 캐러 다니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산호에 찾아오는 오랜 단골부터 단골의 추천으로 찾아오는 손님, 또는 단골의 아들, 딸, 손자까지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자연산 나물을 대접하고 싶기 때문이다.

산을 다니던 중에 30년동안 산을 일궈 엄나무순, 곰취, 나물취, 참취 등을 재배한 작은 농장 주인을 만났고, "가족끼리 먹으려고 기르기 때문에 팔지 않는다"는 농장주를 설득해서 나물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 대표가 자주 찾는 소백산 줄기 암자 옆에는 예부터 임금님 상에만 오르던 귀한 어수리나물과 뿌리를 캐서 무쳐 먹거나 술로 담그는 더덕, 잔대 등이 있다. 산에서는 나물 외에도 개복숭아, 오디, 매실, 오미자 등의 열매를 따서 효소나 식초로 만들어 김치나 장아찌를 담거나 나물 무침 양념으로 쓰기도 한다. 천연 재료를 활용하면 자연스럽게 설탕이나 소금 등을 덜 쓰게 된다.

산호의 주메뉴는 민어 회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이다. 정해진 상차림은 없고 계절에 따라 제철 재료로 요리한 음식과 안주들을낸다. 회 종류는 연안부두에서 20년 넘게 거래하는 곳이 있고, 생물은 사리 때 맞춰 주문해서 받아 쓴다. 모든 상에 빠지지 않는 김은 장봉도 양식장에 1년치를 미리 계약해서 받아 물회에도 쓰고 생김으로도 올린다.


산호는 지난 1993년 구월동 지적공사 앞에 테이블 4개와 방 2개 딸린 작은 가게로 시작했다. 이 대표의 손맛이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늘자 구월동과 청학동 두 차례 이전을 거쳐 2005년에 남동구노인복지관 뒤편으로 옮겼다가 건물주의 빌라 신축계획으로 인해 2011년 또다시 맞은 편인 지금의 자리까지 옮겨 왔다. 이 대표의 변함없는 손맛과 푸짐한 상차림, 따뜻한 손님맞이에 끌려 개업 초창기 인연을 맺은 뒤 가게를 옮길 때마다 계속 찾아오는 단골들이 유독 많다.

구월 산호의 벽면에는 각종 표창장, 감사패 등이 즐비하게 걸려있다. 이 대표가 해마다 명절 때나 어버이날 등이면 가게 인근 어르신 100여명을 초청해 점심 대접을 해오고, 틈나는 대로 봉사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홀에 테이블이 있고 홀을 중심으로 방이 있는데 사람 수에 따라 방을 트거나 막을 수 있는 미닫이문으로 칸막이가 돼 있다. 032-441-1005

/글·사진 여승철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인천 인문학 서당 '온고재' 산호에서 번외 수업

 

 

 

▲ 인천 인문학 서당 '온고재'의 이우재(가운데) 훈장과 수강생 인수범(오른쪽)·최창락씨가 '구월 산호'에서 만났다.

 


"인문학이란 어떻게 보면 간단해요. '인간이란 무엇이냐' 또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자신을 고찰해보는 거지요. 하지만 B.C 4~5세기경 거의 동시대 사람이었던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에 의해 인간을 돌아보는 철학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이래 2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뚜렷한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해결 방법의 하나로 인문학을 배우고 익히고 있는 거지요."

인천의 인문학 서당인 온고재를 이끌고 있는 이우재 훈장, 그리고 온고재 강의를 거의 빼놓지 않고 들어 온 열혈 수강생 인수범씨와 최창락씨가 인천 남동구노인복지관 뒤편에 있는 '구월 산호'에서 만났다. 이 훈장은 인문학이나 철학과 철기시대의 도래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온고재 강의실인 듯 열강을 시작했다.

"철기시대가 왜 중요하냐면 이때부터 농기구 등 본격적인 생활용기가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게 톱이에요. 이전의 청동기시대에는 주로 무기나 제사용구로 제작되었어요. 또 철기가 훨씬 단단해서 청동기 농기구보다 땅을 파도 더 깊게 팔수 있고 나무를 베어도 힘이 덜 들었지요. 그러면서 인간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전시대보다 상대적으로 먹고 사는 일에 여유가 생기면서 인간의 사유가 시작됐지요."

온고재는 내년이면 인천에 인문학을 전파한지 10년을 맞는다. '문(文)·사(史)·철(哲)', 즉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표하는 전통 인문학은 물론, 음악·미술 감상·영화·민화·국악 강습 등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열어오고 있다. 온고재는 현재 매주 월요일에 순자, 화요일에 논어강독, 금요일엔 이슬람문화 특강을 하고 있다. 성인들에게는 소정의 수강료를 받지만 대학생까지는 강의료를 받지 않는다.

"제가 논어를 다시 읽게된 게 90년대 초중반이에요.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에 상처가 많을 때 호인수 신부께서 '딴 생각 하지말고 책이나 열심히 읽어라'라고 하셔서 논어를 잡게 됐는데 그 때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란 구절을 읽고 뒷머리를 망치로 한방 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모르는 말이 아니었는데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말라'는 그 말을 곱씹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앙앙불락(怏怏不樂)하던 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어리석게 보였는지. 그러면서 논어 해석의 오류도 발견하게 되고 공자의 본래의 뜻에 충실하게 다시 해석하게 됐지요. 그렇게 논어를 열심히 읽고 있던 어느 날, 호 신부께서 '요즘 논어에 푹빠져 있다며? 그러면 우리 신부들에게 논어를 가르쳐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시작된 제 논어 강의 첫 수강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천주교 신부님들이었어요."

인천지역의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시민과대안연구소의 연구기획위원 인수범씨는 온고재 설립초기부터 이우재 훈장과 인연을 맺어 꾸준히 강의를 들어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부평의 한 주점에서 이 훈장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에 논어강의를 하고 계셨어요. 그 때 훈장님하고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온고재 강의를 듣고 있죠. 물론 훈장님의 강의에 따라가지 못하고 최근에는 '강의보다 뒤풀이에 충실하다'는 핀잔을 듣고 있어서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쉽지 않네요."

인천수산물유통업협동조합 전무이사인 최창락씨는 5년 전 인문학 열풍이 한창일 때 인천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온고재를 찾았다.

"당시 제가 기웃거린 온라인이나 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듣던 인문학은 본질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CEO의 경영에 도움이 되는 조직관리, 인맥관리 등을 위한 인문학이 많았지요. 반면 온고재는 지식과 교양을 넓히는, 인문학 본연의 범주에 충실한 점이 달랐어요. 한마디로 '돈은 안되지만 마음의 양식을 쌓는' 진짜 인문학이었죠."

학창시절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바꿔보려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우재 훈장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깨달은 점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인간이 가진 위대함이란 자신을 돌이켜 보는 것이고 잘못된 점을 찾으면 반복하지 않는 자기성찰을 한다는 점이에요. 새벽의 미명에 잠이 깼을 때 보이는 나 아닌 나를 보아야 해요."

이우재 훈장이 '나'를 찾는 사람들에게 방법으로 제시하는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을 때 "나물 좀 더 드릴까요"하며 방문을 여는 이옥란 대표가 주말마다 나물을 찾아 떠나는 산행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지점으로 겹쳐 보였다.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