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사회부 기자
끔찍했던 사건은 큰 상흔을 남긴다. 작년 3월에 터진 인천 연수구 초등생 살인사건도 그랬다. 400여 일이 지난 사건이다. 엽기적인 범행 수법과 잔혹 무도한 범행 전후의 행동 때문에 온 국민이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아픈 사람은 아이를 잃은 유가족들이다. 사건 다음날, 기자는 사랑이(가명) 부모 지인에게 경찰 브리핑 내용을 알려 달라는 부탁을 받아 어렵사리 장례식장에 발을 들였다. 장례식장을 채웠던 슬픈 공기는 얼마 전 목포 세월호 인양 현장에서 느꼈던 그것과 비슷했다. 복도 끝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니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는 사랑이 얼굴이 보였다. 그 앞에 넋 놓고 통곡하며 주저앉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죄지은 사람처럼 무릎 꿇고 앉아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하는 것뿐이었다. 기자를 넘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는 함부로 묻지 않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진실을 밝혀 달라. 오보 쓰지 말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어찌 할 수 없이 눈물이 솟았다.
그 이후 유가족들은 공중파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을 전했다. 다시는 이런 참혹한 사고가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잘못한 이가 합당한 벌을 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은 들끓었다. 비록 범인이 미성년자라도 법정 최고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절대 다수였다. 당장 소년법을 개정하자는 요구도 봇물처럼 밀려 왔다. 그렇게 사회는 변하는 듯했다.

결국 사건이 벌어지고 6개월 뒤인 9월22일. 인천지법 형사15부는 주범 A양에게 징역 20년, 공범 B양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 이후에는? 추리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제목처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유가족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끊었다. 아무리 말해도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한 이웃은 소식을 전하며 "벌떼처럼 모여들어 사회를 바꾸겠다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라며 "관심 끄는 이슈에만 집중했다 사라지는 모습에 유가족들이 크게 실망했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2심 판결 후 반짝했던 관심이 다시 유가족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사건을 흥미로 소비하려 한다. 한바탕 흥분한 뒤 다른 먹이를 찾아 떠난다. 미성년자 처벌을 강화하는 소년법 개정안은 작년 9월 총 9건이 발의됐지만,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범인만큼 잔인한 우리가 유가족을 아프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