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난지도 열흘인데 찌는듯 도시의 여름밤은 여전하다. 전기요금 부담이라 에어컨도 가동 못하고 선풍기나 돌리자니 성에 차지 않는다. 부채를 들고 누워 잠을 청하나 쉽지 않고 뒤척이기만 할뿐이다. 그런데다 이웃에서는 남녀간에 다투는지 시끄럽고 겁난 어린 것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아마도 무더위에 지쳐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리라.
 창문을 열고 사는 여름밤의 도시 소음은 그것만이 아니다. 지금 자동차로 조용한 곳이 달리 없겠지만 차량들의 질주하는 굉음이 밤새도록 그치지를 않는다. 옆집의 TV와 노래방 소리도 밤잠을 설치게 하고 골프연습장의 공치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한다는 보도도 있다. 골목안이나 가까운 잔디밭에 찾아 나서지만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예전 시골의 여름밤이 그리울밖에 없다. 그 때 그곳은 시끄럽지가 않았다. 들일로 늦은 설거지를 마친 아낙들이 동네 마당에 자리를 깔아 모여앉고 어린 것들도 덩달아 따라 나섰다. 귀퉁이에는 모깃불이 피어져 매캐한 연기가 오르는데 싫지가 않았다. 빈 화로에 불씨를 담고 꾸덕꾸덕 마른 푸새를 얹으면 이것이 오래도록 타느라 그악스런 모기를 쫓았다.
 아낙들의 이야기꽃이 무르익어 보리수매가 어떻고 고추밭에 병이 퍼졌느니의 정보가 오가고 곧 어느집이 딸을 여인다든지 며느리를 맞는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별하나 나하나”를 외우던 어린것들은 도깨비를 보기나 한듯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엮는다. 이때쯤 어느 집에서였을까. 찐 옥수수와 감자 혹 강낭콩이 드문드문 섞인 밀범벅이 나오기도 했다.
 이윽고 밤도 이슥해서 하나 둘 자리를 뜰 무렵이면 낮고 뿌옇게 깔린 모깃불 연기가 안개끼듯 동네안을 휘돌고 이따금 멀리서 싱겁게 개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럴때 선득해지는 것은 동구 밖으로 빠지는 돌담길 모퉁이-지난해 죽은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곳이다.
 이렇게 해서 시골의 여름밤은 무덥거나 시끄럽지 않게 지새게 마련이었지만 오늘의 도시 여름밤은 그렇지가 않다. 정취도 꿈도 여유로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