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경 정경부장
전거복 후거계.(前車覆 後車誡·선인들의 실수나 잘못이 후세 사람들에게는 경계가 된다) 중국 전한(前漢)의 문제(文帝) 때 가의(賈誼)라는 신하가 제후들의 반란과 흉노의 잦은 침입으로 고민에 빠진 문제에게 진시황제의 진(秦)나라가 왜 14년 만에 사직을 닫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면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전철(前轍)'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조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가의는 문제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속담에 말하기를 '관리 노릇하기가 익숙하지 못하거든 이미 이루어진 일을 보라' 했고, 또 진나라가 어떻게 빨리 멸망하였는지는 그 수레바큇의 자국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바퀴 자국을 피하지 않는다면 뒤에서 오는 수레는 또 넘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앞의 실패를 그냥 실패로 보고 끝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고구려를 수차례 공격하고 당대 성군으로 칭송을 받던 당 태종은 '이고위경 가이지흥체(以古爲鏡 可以知興替)', 즉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조직의 흥망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앞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똑같은 실패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보면 마치 앞 정권을 쫓아가듯이 임기 초기 인사 실패, 임기 중 가족 또는 측근 비리, 막판에는 대통령 본인의 비리로 불행한 결말을 맺는 비슷한 길을 반복해 걷고 있다. 국민들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대한다. 과거 정부와는 달리 좌고우면하지 않고 국민만을 바라보며 유능하고 공명정대하게 국정을 이끈 후 국민들의 박수 속에 명예롭게 청와대를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새로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임기 초 인사에서 판가름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10년 동안의 보수 정권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진보 성향의 정권으로 바뀌었다. 앞서 두 전직 대통령은 불행하게도 재임 중 개인 비리로 현재 영어의 몸 신세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두 전직 대통령에게는 개인비리 외에 인사 실패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부터 임기 중반까지 줄곧 인사 시비로 휘청거렸다. 특히 정부 고위직 인사에서 큰 불신을 가져왔다. 여론조사에서 불공정분야 1위가 정부 고위직 인사라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국민의 불신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 '작은 정부', '머슴론'을 강조하며 조직을 통폐합했지만 실제로 공무원 인력은 더 늘리는 모순을 보였다. 임기 반환점을 돈 이후 인사에서는 영남이라는 지역 편중에 특정 대학 출신이 주요 요직에 포진해 국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집권 시절 내내 논란을 빚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장·차관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가 인사검증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거나 어렵게 자리에 올라도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각종 이유로 중도하차하기 일쑤였다. 박 전 대통령의 인사실패 원인은 원칙과 기준, 철학이 없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곧 집권 1년을 맞는 문 대통령 역시 임기 초 인사에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며 앞선 대통령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1년도 안돼 내정한 장·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 후보자 8명이 중도 탈락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청문회나 야당의 발목잡기 탓을 하고 싶겠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문 대통령 인사의 가장 큰 문제는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똑같은 실패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인사 전 내정자에 대한 사전 조사와 검증, 여론수렴, 사후 대처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문제투성이의 인사들을 발탁해 놓고 여론의 질타가 쏟아져도 버티기로 일관하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는 것이 정석처럼 돼 있다. 최근 중도 하차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역시 인사 전 검증과정부터 사후 대처까지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정부든 어느 조직이든 인사는 수장의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원칙과 기준이 없는 인사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떨어뜨리고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특히 정부 인사의 실패는 정책으로 연결돼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겨질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서 정권 유지의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