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관심 없던 고3, 마술로 직업·명예·결혼까지 이뤄
올해 장애우마술사 무대 올리는 게 목표 … 콘텐츠로 승부
▲ 한영훈 마술사는 마술이 좋아 15년 동안 직업 마술사로 살아왔다. 특히 그는 불을 다루는 전문 불 마술사로 '파이어 매지션'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그는 이제 마술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마술을 거부하고 새로운 마술의 지평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엔터스테이지
멋지고 세련된 신세대 마술사가 지팡이로 장미꽃을 만들고, 손 안에 있던 동전을 없애기도 한다. 분명 내가 고른 카드를 손에 쥐고 있는데, 마술사는 호주머니에서 바로 그 카드를 꺼낸다. 허공에서 비둘기가 나오고, 빨간 색종이가 장미꽃으로 변화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그 마술은 마냥 눈속임일까? 한영훈 마술사(엔터스테이지 대표)는 서른하고 네 살을 더 먹었다. 그는 삶 그 자체가 마술이었다. 이제 마음의 문을 열고 그가 펼쳐 보이는 '마술 인생'의 문을 두드려 본다.


#건강한 문제아, 마술처럼 이뤄진 꿈

"기술에 감정과 예술을 접목할 때 비로소 마술이 됩니다."
'파이어 매지션 한영훈.' 그는 불을 다루는 마술사다. 국내 유일한 전문 불 마술사다. 고전적인 불 마술이 아니라 요즘 트렌드에 맞게 불로 다양한 현상을 구현한다. 그는 '마술은 감정을 다루는 시각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중학생 때 축구를 했고, 고등학생 때 국악을 했다.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건강한 문제아'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성공한 젊은 마술사가 됐을까.

마술은 마술처럼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젊은 날, 진로를 고민할 때 마음을 다잡아 주고 치유해 준 것이 마술이었다. 그리고 마술사의 길을 열어 줬다. 공부보다 축구와 국악을 좋아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2년 어느날, 이은결·최현우 마술사를 TV에서 봤다. 마술이 최고 인기를 누리며 누구나 마술사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그 역시 마술을 배웠고 생활 마술은 조금만 연습하면 일상에 오아시스 같은 기쁨과 웃음을 줬다. 그 때 시작한 마술이 직업으로 이어져 마술사의 길을 걷고 있다. 마술은 그에게 속임수가 아니라 종합예술이고, 인생의 신비를 푸는 열쇠였다.

동화 속 마법사는 주문을 외우지만, 현실 속 마술사는 주문 대신 아이디어를 개발한다. 무대 위에 오르기 전까지 도구를 만들고 의상을 준비하며 오랫동안 공을 들인다. 이렇게 완성된 종합예술, 마술을 보고 즐거워 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 위해 못 할 것이 없다

그는 축구선수도 아니고, 국악인의 길도 아닌 건축공학과로 대학을 진학했다. 그 해 겨울, TV에서 마술 공연을 봤다. 순간, 그는 다시 설렜다. 운명의 길을 찾아 낸 것 같아 전율했다.
"아, 마술은 공부랑 병행할 수 있겠구나."

공부를 해야 할 때, 또다시 한눈을 팔았다. 대학 진학 이후 최현우·이은결 소속사 오디션 공모에 합격했다. 결국 대학 1학년 2학기 때 휴학하고 고시원과 소속사에서 생활하면서 전문화 과정을 거쳤다.
"사실, 축구도, 국악도 모두 잘 맞는 분야지만 좋아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했기에 좋은 마술사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마술은 누군가에게 뭔가를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성격과 딱 맞아떨어졌다. 고시원에서 살면서 비둘기 똥 치우기 등 잡일을 하면서 지냈던 당시 현실은 그야말로 혹독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몰입하며 남다른 열정을 쏟아냈다.

"10년이 지나서야 그 열정이 빛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때가 없었으면 좋은 마술사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전문마술은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해야 하기에 마술을 시연하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미치도록 몰입하는 성격으로 극복해 냈다. 마술은 정직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어떤 결실도 용납하지 않았다. 과학과 연기, 마임, 음악 등을 널리 배우는 전문 마술사 수련 과정을 거쳤다.

마술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보이는 기법들이며, 그것을 연기하는 사람을 마술사라고 한다. 손기술에 의한 재주, 아니면 장치나 도구에 의존한 마술을 사람들은 '쇼'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다. 나머지는 그 연기를 하기 위해 밑바탕에 깔려 있는 화술, 마임, 음악, 디자인 등 여러 예술 분야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영훈 마술사는 "마술은 뮤지컬처럼 공연예술이며, 시각예술이라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더 큰 감동과 즐거움을 얻는다"고 마술 공연 관람 팁을 전한다.

#국내 유일 불 마술사

한영훈 마술사는 불을 전문으로 다루는 국내 유일한 마술사다. 세계적인 불 마술사도 5명에 불과하다. 화재 위험 때문이다. 고전적인 불을 다루는 마술계보는 고 이흥선 선생과 김청 교수 등 2명이 있다.

그가 하는 불 마술은 요즘 트렌드에 맞춰 맨손으로 불을 늘린다거나, 불을 가지고 비둘기를 만든다거나 하는 등의 불로 다양한 현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의 주특기인 불 마술은 불을 다루기 때문에 위험하다. 실제 화약이 폭발해 사고가 나기도 하고, 손에 화상을 입는 것은 기본이다. 안전도구 등을 준비해야 하기에 돈도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막내 마술사가 주로 배운다.

그는 불 마술에 몰입해 그 분야를 더욱 발전시킨 독보적 불 마술 '1인자'다. 그리고 불 마술도구를 직접 제작·판매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의 회사에는 불 마술에 적합한 현직 소방관인 마술사가 있는데, 소방안전 교육을 할 때 마술을 접목해서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불 마술을 배운다고 한다. 불은 유용하지만 잘못 쓰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불 마술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기술에 감정과 예술을 섞을 때 마술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술만이 있는 마술은 현상에 불과하죠. 마술은 눈으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 마술이 감정을 다루는 시각 예술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그는 열악한 환경과 상황을 기회로 삼아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마치 마술처럼, 불 마술 '1인자'라는 성공한 자기 영역을 개척했다.

마술이 배우자도 연결해 줬다. '마술사를 그만 둘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기에 공연장에서 마술사와 관객의 관계로 아내를 처음 만났다. 그래서 마술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면 소망도 들어준다고 믿는다. 다시 마술을 붙잡았고, 그 무렵 대학에서 강의 제안을 받는 등 또다시 일이 마술처럼 풀렸다고 한다.

이제 그는 마술 인생 15년을 결산하는 새로운 마술을 부리고 있다. 인천에 마술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세우고 마술공연과 마술교육, 마술도구제작에 나섰다. 특히 장애우 마술사와 실버 마술사들이 세상의 '눈속임'을 넘어서 창작 공연마술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무대에 서서 관객들에게 행복감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매직 쇼'를 보여줄 계획이다. 사람들이 '이것은 전혀 불가능해!'라는 것을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일 구상을 갖고 있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상상력을 키워 주는 즐거운 마술을 펼쳐 보이기 위해서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해 마술사 라는 꿈을 이룬 그는 올해 2월 마술 회사 '엔터스테이지'를 설립했다. 마술공연팀과 마술교육팀, 마술도구 제작팀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특히 창작공연을 선보이고 창작에 기반을 둔 마술도구를 제작, 판매하기 위한 제작실을 꾸리는 등 직원 11명과 함께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엔터스테이지에는 교통사고로 다리 절단 장애를 얻은 마술사와 불 마술을 하다 폭약이 터져 한 손을 잃은 마술사, 실버 마술사, 소방관 마술사 등 구성원들도 다양하다.

올해 소속 장애우 마술사 2명이 무대에 서는 공연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좋은 콘텐츠를 준비해 열심히 연습 중이다.

"우리나라에 4명 밖에 없는 장애 마술사들인데도 사실, 다른 회사에서는 소속 마술사로 받아들이길 거부했어요. 그들도 실력으로 인정받는 성공한 마술사가 될 수 있으며, 단순한 웃음만 주는 구걸하는 '쇼'가 아니라 휴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장애가 있어도 무대 마술공연을 펼칠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불 마술 특성상 15분 정도 공연할 수 있지만 그는 앞으로 1시간짜리 콘텐츠를 만들어 해외 공연에 나가는 것을 꿈꾸고 있다. 이 역시 불이라는 콘텐츠로 해외 시장에 나가는 마술공연은 처음이다.

그는 보여주기식 마술 '쇼'가 아니라,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있고, 주제가 있는 콘텐츠 마술을 하겠다면서 콘텐츠의 이름이 있는 마술 시장 개척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리고 단호히 말한다.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마술은 하지 않겠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