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품은 공원 속 도서관…또 하나의 예술이네
▲ 안양 파빌리온 건축물 외관. /사진제공=안양문화예술재단
▲ 덴마크 작가 예페 하인이 만든 '노래하는 벤치'./사진제공=안양문화예술재단
▲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즐기는 예술 숲 산책./사진제공=안양문화예술재단

"정숙, 정숙!" 도대체 정숙이는 누굴까. 우리는 살아오며 '도서관에선 정숙'이란 말을 쉽게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도서관은 곧 조용히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장소라는 인식이 강하다. 침묵과 행동이 제한되는 곳. 시끄러우면 주변 사람에게 눈치받는 곳. 도서관은 정말 조용히 앉아 책만 보는 곳일까?

도서관은 변했다. 사람들은 이제 조용히 책만 보러 도서관을 찾지 않는다. '도서관은 정적'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잘 꾸며진 도서관을 찾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안양에 있는 '안양 파빌리온'은 예술공원 속에 있는 도서관으로 자유롭게 누워 책을 읽고 예술을 즐기는 이색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딱딱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점점 즐길 수 있는 휴식 장소로 변하고 있다. 이는 도서관이 기존 틀을 깬 복합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원과 함께하는…'공원 도서관'
4월이 살랑인 바람에 떨어진 벚꽃 잎이 뒤통수를 간질이던 11일 낮.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엔 11자로 펼쳐진 벚꽃 길을 두고 등산객과 연인들로 붐볐다. 사람들이 걷는 길 사이로 잔잔한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잎도 바람을 타고 세상 구경을 했다. 벚꽃에 이끌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자연과 어우러진 새하얀 건물이 공원에 녹아든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다리 없는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처럼 보이는 건물의 이름은 '안양 파빌리온'.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건축한 파빌리온은 안양시가 빛바랜 유원지에 '공공예술'이란 색을 더해 만든 국내 유일 예술 도서관이다.

파빌리온이 예술 도서관이라 불리는 이유는 도서관 주변인 안양예술공원 일대가 다양한 공공예술 작품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술공원에 찾아와 다양한 예술 작품을 즐기고 도서관에서 작품 정보를 얻는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들은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여기 적힌 작품 보러 나갈까?"

도서관에서 책을 보던 연인은 가볍게 들어온 곳에서 새로운 목표를 찾아냈다. 주섬주섬 옷을 챙긴 그들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휴식과 독서 그리고 예술이 공존하는 곳. 예전 도서관과 달리 자유와 예술이 더해진 파빌리온은 예술이 녹아든 '공원 도서관'이다. 공원 도서관은 건축, 디자인, 미술과 같은 전문 서적뿐 아니라 안양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 자료에 이르기까지 약 2000여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도서관이라 하기엔 적어 보일 수 있지만, 공공예술을 이해하는데 부족한 수는 아니다.

파빌리온이 처음부터 도서관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2005년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처음엔 주로 전시회로 사용됐다. 하지만 안양문화예술재단은 전시회 사용을 넘어 사람들이 공공미술과보다 친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2013년 예술과 결합한 공원도서관으로 재탄생해 사람들 곁으로 다가오게 됐다.

▲예술과 함께하는…'예술 도서관'
"이거 정말 종이로 만든 거야?"

안양 파빌리온 공원도서관은 간단하지만 독특했다. 파빌리온에 들어서자 정중앙에 놓인 거대한 쉼터가 보였다. 도서관에 들어온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이거 진짜 종이야!"고 외친다. 신기한 듯 종이를 꾹꾹 눌러보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최정임 도슨트는 "'오아시스'라 불리는 이 쉼터는 골판지에 옥수수 전분 풀을 더해 만들어졌다"며 "예술 작품 공모전에 당선된 인기 있는 작품이다"고 말했다.

오아시스 앞에는 '무문관'이란 서가가 있다. 문인 듯, 문이 아닌 듯 벽 전체를 자리 잡고 있는 이 책장은 거푸집과 버려진 가구들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재활용을 주제로 거푸집을 이용해 '연거푸' 사용한다는 이 작품을 보며 저마다 한 번씩 '드르륵' 거리며 문을 여닫아본다.

이곳에 들어선 책들도 조금 특별하다. 공원 도서관은 시중에 팔지 않는 책을 비롯해 안양예술공원과 함께한 작가들의 책들로 가득하다. 실제로 '알바로 시자'가 기증한 책은 국내에선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서가 앞쪽에 놓인 '돌베개 정원'도 시선을 뺏는다. 도서관에 온 사람들은 진짜 돌이 맞는지 손으로 툭툭 건드려보곤 한다. 이 작품은 천연재료로 염색한 유기농 면직물로 만든 쿠션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 안양에 놀러 왔을 때 경험한 안양천 일대 바위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가 눈치 보지 않고 책을 꺼내 눕고 앉으며 도서관을 즐기고 있었다.

안양문화예술재단 강수민 주임은 "안양 파빌리온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예술 공간이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원도서관이다"고 말하며 "예술과 함께하는 공원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편히 앉아 휴식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임태환 수습기자 imsens@incheonilbo.com


쇠락한 유원지, 다시 시민 곁으로
안양예술공원 60여 조각·건축 작품 설치…도슨트 운영도

"이 작품은 덴마크 작가 예페 하인이 만든 '노래하는 벤치'입니다."

최정임 도슨트는 그늘 아래 자리 잡은 물결 모양 벤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치 악보의 오선같이 생긴 이 작품은 공원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얼핏 보면 '그냥 특이한 벤치다'는 생각에서 그치지만 설명을 듣고 나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5줄로 만들어져 마치 오선처럼 보이죠? 여기에 사람들이 앉는 순간, 그 머리가 음표가 되어 함께 노래를 만듭니다."

지난 11일 방문한 '안양예술공원'. 안양 석수동에 있는 이곳은 공원 곳곳에 '공공예술'이 스며든 특별한 장소다. 공원 주변은 조각품과 건축물 등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예술작품 약 60여개로 빛나고 있었다. 바람에 몸을 맡겨 주위를 천천히 걷다 보니 여기저기 숨겨진 보물들을 찾을 수 있었다. 최정임 도슨트는 "전날 바람이 많이 불어 이동로에 나뭇가지가 많이 있다"며 "이런 자연스러움 마저 공원과 어울리는 배경이 된다"고 말했다.

예술공원은 과거 '안양유원지'가 있던 장소다. 1930년대 이후 약 3~40년간 휴양지로 뜨거운 사랑을 받던 유원지는 시설 노후와 환경 훼손 등으로 쇠퇴했다. 안양시는 빛바랜 장소로 방치되는 공간을 바꾸기 위해, 1999년부터 2004년까지 환경개선사업으로 도로를 새로 놓고 하천을 정비했다. 그 결과 시민들이 웃음꽃을 피우는 공간으로 2005년 멋지게 돌아왔다.

예술과 함께 재탄생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눈과 귀로 즐기는 '예술 숲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공원에 녹아든 작품을 해설과 함께 느끼며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작품 나들이를 떠난다. 1000원으로 약 90분간 진행되는 예술 여행을 떠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체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 도슨트는 관객에 맞춰 코스를 조절하기도 한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지선(안양·44)씨는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예술공원이 생기기 전엔 유원지에서 술 먹고 난리 치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연신 '최고'를 외쳤다.

이현주(안양·41)씨는 안양예술공원을 통해 예술을 이해하는 시간이 됐다고 한다.
"보통 예술작품들은 못 만지게 하잖아요? 그런데 직접 손으로 만지고 앉아보기도 하며 이런 게 공공예술이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안양시민으로서 먼 곳이 아닌 자주 산책 다니는 곳에 이런 공간이 있어 행복합니다."

/임태환 수습기자 imsen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