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습자 유족 권오복씨 … 동생·조카 그리던 4년
선체 직립수색 실낱 희망 "이제 목포로 떠납니다"
▲ 세월호 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전남 목포 신항만에 육상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추모객들이 직립작업을 살펴보고 있다.한편 세월호 미수습자는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일반 승객 권재근씨·혁규군 부자 등 5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고 권재근씨(오른쪽)
▲ 당시 6세 혁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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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서울 구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권오복(64)씨. /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 동생과 조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권오복(64)씨는 고(故) 재근(당시 51세)씨와 조카 혁규(당시 6세)군을 떠나보내지 않았다. "새로운 기다림을 시작하려고요." 담담한 목소리에는 바로 선 세월호에서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묻어있었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에서 그를 만났다.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다가왔지만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인 재근씨와 아들 혁규군은 아직 미수습자로 남아있다. ▶관련기사 19면

7남매 중 여섯째 동생 재근씨와 셋째 권씨는 어렸을 때부터 각별한 사이였다. 생김새와 체격이 비슷해 슈퍼마켓 주인이 두 사람을 착각할 정도였다. 세월호 사고는 우애 깊은 형제를 영영 갈라놓았다. 2014년 4월15일. 재근 씨 가족은 제주도로 귀농하기 위해 인천에서 세월호에 올랐다. 재근씨의 '시간이 없어 점심을 못 먹을 것 같다. 다음에 먹자'던 전화가 그와의 마지막 대화가 돼 버렸다.

재근씨의 딸 지연(당시 5세)양은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지만, 아내 한윤지(당시 29세)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지연양도 사고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술과 담배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여름에 제주도로 놀러가겠다고 말한 게 마지막이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고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무려 3년7개월 동안 전남 진도 팽목항과 목포 신항을 오갔다. 동생과 조카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타지에 머무느라 운영하던 가게를 닫았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세월호 직립(直立)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전남 목포 신항에서는 지난 2월부터 옆으로 누워있는 세월호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미수습자 수색도 곧 시작된다. 그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동생과 조카를 만나기 위해 목포로 향한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작년 11월 동생과 조카의 시신 없이 옷 몇 가지를 넣은 유골함으로 장례를 치렀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장례를 치러야만 했던 아픔은 그의 뼈 속에 새겨져 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그는 남아있는 조카 지연 양을 위해 끝까지 동생 가족을 수습할 생각이다.

"동생 화물차가 있던 곳을 다시 수색하면 유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다시 시작하는 2기 특별조사위원회도 침몰 원인부터 의문점을 명명백백 밝혀주길 바랄 뿐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이제 목포로 떠날 겁니다. "

/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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