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정신은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것"
▲ 최소연 교수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민속과 예' 강의를 하고 있다.
봄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매만져 주었다. '차(茶) 향'을 품은 바람이었다. 진하기 보다는 은은한 꽃향기가 묻어 있었다. 향의 진원지 '仁修堂'(인수당, 어짊을 수련하는 집)을 찾았을 때 최소연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은 남녀 대학생들의 찻잔에 일일이 매화꽃잎을 띄워주는 중이었다. 진달래색 저고리와 짙은 감색치마가 차의 푸른 빛깔이 잘 어울렸다.

"매화는 겨우내 언 땅을 뚫고 피어나는 꽃입니다. 서리도 눈도 두려워하지 않고 피어나 고고한 자태로 다가오지요. 우리가 공부하는 차와 궁합이 잘 맞는 꽃입니다. 자, 여러분 봄을 맛 보세요."

최소연(68) 교수.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그가 매주 금요일이면 교육자의 모습으로 대학 강단에 선다. 봄날의 아침, 학생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새봄의 기운처럼 활기찼고, 매화를 띄워주는 손은 봄햇살처럼 따뜻해 보였다. 가천대 메디컬캠퍼스 인수당에서 최 이사장이 강의하는 과목은 '한국민속과 예'이다. 차를 마실 때 지키는 예의범절인 '다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전통예법을 전반적으로 공부하는 과목이다. '물질문명과 기계문명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인의 생활과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차(茶)와 관련된 각종예법을 살펴봄으로써 정신건강을 맑게 하고 생활의 여유를 확보한다'는 강의 취지에 걸맞게 그의 강의는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고 있었다.

"많이 배우면 뭘 하나요, 인간의 기본이 안 돼 있으면 절대 사회에도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차의 정신은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공손하고 아름다운 이타주의라고 할 수 있죠. 제 과목이 지향하는 지점은 바른 인성과 올곧은 예를 갖춘 사람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한다 …. 피는 못 속이는 법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최 이사장은 모친 고 이귀례 명예이사장이 생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대뇌고 있었다. 데자뷔가 느껴졌다.

이귀례 명예이사장은 일제강점기 말살됐던 우리 차문화를 일으킨 1세대 차인이었다. 차인의 정신을 신념으로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한 언행일치의 삶으로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의 장녀 최 이사장 역시 모전여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생전 나는 푼수야 푼수란 말을 했는데, 저 역시 푼수인걸 보면 엄마 딸 맞는 것 같아요."
최 이사장의 말인즉슨, 차문화운동을 하려면 재원이 필요한데 상당 부분 사재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천시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전체적인 살림살이를 꾸려가기엔 크게 부족하다. 이따금 남편으로부터 '당신 대체 어떡하려고 그래?'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털어놨다.최 이사장은 "어머니가 일궈놓은 차문화운동의 결실에 벽돌 한 장 만이라도 쌓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계승했다"며 "관계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차문화운동에 뜻있는 분들의 도네이션(기부)이 보태진다면 저희 차인들은 더욱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머니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임기를 시작한 뒤 이미 벽돌 한 장을 쌓은 상태다. 바로 일본 교토(京都)지부의 개설이다. 최 이사장은 5년 이상의 엄격한 수련기간을 거치고 20명 이상의 회원이 모인 것을 확인한 뒤 교토지부 개설을 허락했다. "5년 동안 한국으로 와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구요. 앞으로 해외지부를 개설할 경우에도 충분한 교육과 열정을 테스트한 뒤 허가를 내 줄 생각입니다."

최 이사장은 차문화운동은 단순한 차마시기 운동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국민들이 건강해지면 나라가 건강해지는 겁니다. 차를 마셔서 국민건강을 크게 증진시키려는 것은 기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에서 오천년간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로 흘러온 한민족의 유구한 정신을 잇고, 예로서 삶을 살아가신 선조들의 삶을 이어가는 정신문화운동이 바로 차문화 운동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대학강의는 차문화운동의 중요한 방식이다. 어려서부터 차를 배운다면 인성과 지성을 고루 갖춘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민속과 예'의 커리큘럼은 예절의 정의, 복식예절, 인사예절, 뵙는 절, 큰절, 상례절 등 우리 예법에 관한 것들로 짜여져 있다. 차의 역사와 생활차행다법, 선비차행다법, 규방다례 등 다도에 관한 것들이 포함된 것은 물론이다.

최 이사장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수강신청이 3분~5분 만에 마감되는 것은 예사. 1학년 때부터 수강신청을 했으나 계속 실패해 3,4학년 때 겨우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응급구조학과 4학년 임유나(23) 학생은 "1학년 때부터 수강신청을 했는데 학생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인기과목이다보니 이제사 강의를 듣게 됐다"며 "절 하고 한복 입고 하는 과정이 어렵긴 하지만 다른 과목에선 절대 맛 볼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한 번 수강했던 학생들이 너무 좋아 수강신청 없이 다시 청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운동재활복지학과 3학년 이승원(22) 학생은 "최소연 교수님은 학생들이 많아도 대충 하는 법이 없고 개인교습을 하듯이 한 명 한 명 자상하고 꼼꼼하게 지도를 해주신다"며 "한국민속과 예 강의에선 차마시는 방식과 같은 다도를 넘어 남을 배려하고 나를 낮추며 겸손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예의 정신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아침을 거르는 학생들을 위해 매번 맛있는 떡을 준비하거나 개인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도 학생들의 마음을 끄는 비결이다.

차교육 가운데 '차심리상담'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거나 힘들어 하는 사람을 마주한 채 마음을 열어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상처치유 프로그램입니다."

차심리상담은 마음에 드는 받침과 차빛깔을 고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 뒤 고른 이유를 설명하게 하고 차를 따르도록 한다. 그러면서 차를 따르는 기분이 어떤가, 차를 마신 뒤 기분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 차를 당신이 미워하는 사람에게 따라주면 어떻겠는가, 등등 차 한 잔을 함께 하며 쭈욱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그렇게 짧게는 30분, 길게는 몇 시간 씩 대화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상처는 치유되고 상담자는 스스로 갈 길을 발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경청입니다. 차를 나누며 차향을 맡으며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소통이 이루어지죠. 차라는 매개체는 바로 그런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최 이사장은 올해 회원들과 함께 '쉼터'와 같은 곳을 찾아 차심리상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교수니~임!" 강의를 끝날 무렵 서 너 명의 학생들이 인수당으로 들어왔다. 최 교수의 전 학기에서 강의를 수강했던 학생들이었다.

"어서 와, 떡 좀 먹어라" 제자들에게 봄꽃처럼 예쁜 빛깔로 빚은 꿀떡과 매화잎을 띄운 차를 내어주는 최소연 교수의 손길에서 봄이 담긴 차향이 피어올랐다. /글·사진 김진국 논설위원 freebird@incheonilbo.com



[어떤 행사들 열리나] 전국청소년 차예절경연 … 차의 날 차인큰잔치


한국차문화협회가 '제21회 전국청소년차문화전 및 차예절경연대회'를 오는 28일 가천대 글로벌캠퍼스에서 개최한다.

청소년들을 효, 예, 지, 인을 겸비한 인물로 키우자는 취지의 차문화대회다. 전국의 유치원, 초중고, 대학생들이 참가해 다도 생활차경연, 차내기, 절하기, 기본예절(공수법), 옷차림 등의 차예절 경연을 펼친다. 문학체육관광부 장관상,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상 등 각 부분에서 권위 있는 시상이 이뤄진다. 일반인들을 위한 무료 차 시음과 체험시간도 마련했다.

한국차문화협회와 규방다례보존회는 이를 비롯해 '차의 날 기념 차인큰잔치'(6월2일), '제19회 전국인설차문화전 및 차예절경연대회'(10월6일) 등 굵직한 행사를 준비했다. 매년 진행하는 행사다.

여름과 겨울엔 차 지도자를 선발하는 하계·동계 연수회를 치르는데, 필기·실기 시험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인천차문화예절지도사 1,2,3급 자격증을 준다.

/김진국 논설위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