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국 논설위원
'지방'이란 단어는 '중앙'이란 단어의 하위, 혹은 종속적 뉘앙스를 풍긴다. 중앙은 왠지 서울스럽고, 지방은 왠지 시골스럽다. 중앙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우월하고 긍정적인 어떤 것을 연상하고, 지방이란 단어를 접했을 때는 열등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중앙 vs 지방'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중앙집권적 경향을 심화시켜왔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부분의 에너지가 중앙으로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서울 외 지역의 유기적 에너지 교환관계는 철저히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서울 바로 옆인 인천만 해도 공장, LNG인수기지, 화력발전소, 수도권매립지와 같은 온갖 위험·혐오시설이 들어선 반면 서울은 중앙이란 미명 아래 열매만 가져갔다.
중앙집권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중반 이후다. 1991년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며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이란 단어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정확하게 사용되며 중앙집권적 사고의 악몽을 털어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언론의 예를 보자. 서울에서 나와 전국 뉴스를 다루는 신문을 중앙지, 인천이나 경기도와 같은 지역의 뉴스를 중심으로 다루는 신문을 지방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중앙지라 부르는 신문의 경우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이므로 정확한 용어는 중앙지(central newspaper)가 아닌 전국지(national newspaper)가 맞다. 지방지라 부르는 지역언론의 경우 지역지(local newspaper)가 정확한 표현이라는 주장이 양식 있는 언론학자들로부터 제기돼 왔었다.
원혜영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행정기관 명칭에서 '지방'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최근 대표발의했다. 그는 "행정기관 명칭에서 지방을 빼더라도 인천·경기 등 지역명이 포함돼 있어 관할구역 식별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데도 무의식적으로 사용돼 왔다"며 "이런 명칭들이 중앙 우위의 사고를 공고히 하고, 지방 행정기관을 자발적 역량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중앙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객체로 전락시킨다"고 밝혔다. 자치와 분권은 세계화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지역화의 실현은 정확하고 적절한 용어 사용에서 시작해야 한다. 언어는 의식을 결정하고, 의식은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