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위원
조선중앙TV가 방북예술단의 공연 보도에서 걸그룹 레드벨벳의 무대를 '통편집'해 내보낸 일을 보면 아직 평양의 봄은 이른 것 같다. 남북한 문화차이는 당연한 현상이지만 북한의 문화 개방과 수용 능력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빅브라더'의 군림보다 더 예리하게 통제된 사회에서 공공 장소에 모여 개인의 감정과 감흥을 맘껏 드러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집단의 태도도 일사불란하게 표출돼야 한다.
우리도 70~80년대에 영화관에서 애국가를 듣고 '대한늬우스'를 본 다음에야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사회통합의 보편적 사회화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체제유지를 우선하는 북한의 통치가 우리와 같을 리 없다. 그럴수록 두드리면 열릴 거란 기대도 크다. '봄이 온다'고 하지만 불신의 벽도 높다. 속아도 믿고 속아야 하는 행보는 이미 시작됐다. 어쩌랴. 다급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 비핵화와 세계 평화를 견인하는 한반도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길 바랄 뿐이다.

이번 녹화공연을 보며 이산가족의 슬픔은 또 한 번 목멘 가슴을 움켜쥐게 했다. 실향민 '아부이'를 떠나보낸 강산에의 '라구요'는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산가족의 한을 노래했다. 바람 찬 흥남부두를 떠나온 지도 7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1·4후퇴 때 평양에 부모와 혈육을 두고 떠나온 우리 선친들도 이미 이산의 아픔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1983년 KBS가 추진한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을 보며 밤을 지새우다 결국 이산의 충격과 애절한 희망에 겨워 TV마저 틀지 못했던 실향민 가족의 아픔을 이해하는가. 통일이 되면 평양에 가 '고모와 삼촌을 만나야 한다'고 고집했던 아버지의 후손들도 환갑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고 있다. '연평해전'을 만든 영화감독 김학순 서강대 영상대학원 교수, 박영신 인하대 교육학과 교수 등과 내 선친이 평양의 한 지역 출신이었다는 사실도 선친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에야 알게 됐으니 이산의 슬픔은 후손에게 다시 남게 된 셈이다.

베를린 장벽을 넘어 동독의 자유의지를 지핀 팝 스타들의 역할도 위대했다. 문화예술은 사상과 이념을 통합하는 초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록 밴드 스콜피언스의 '변화의 바람'처럼 YB 윤도현의 '1179'가 통일의 전주곡으로 됐으면 한다. 우리 후손에게 다시 분단의 아픔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남북의 훈풍이 불어오길 바란다. 남북한 가족을 꿈에 그렸던 이산가족 상봉의 꿈이 현실로 바뀌길 기대한다. DMZ을 넘나드는 새들처럼 이산가족의 왕래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