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우리는 같은 것의 지옥을 살아가고 있다."
필자 노트북 커버에 붙여 둔 글이다. 노트북을 펼칠 때마다 이 글귀를 만난다. 짧고 강렬한 이 글은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쓴 책 '타자의 추방'에 담긴 핵심 문장이다. 책은 한 교수의 전작 '피로사회'와 '투명사회'에서 시도한 일련의 신자유주의 비판 연속선상에 자리한다.

한 교수는 전작 대부분이 그렇듯 150쪽 남짓 소박한 분량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는다. 모든 것을 획일화, 대체 가능케 함으로써 나와 너 구분 없는 오늘날 세계 폭력을 까발린다. 다르기에 두드러지는 개별적 인간성(개성), 달라서 되레 조화로운 공동체성(다양성)이 배제되고 끝내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다. 이렇듯 타자(他者)가 추방되는 시대는 결국 '같은 것의 지옥'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지옥'이란 낱말의 섬뜩함이 거슬리지만 함의(含意)의 광대함을 고려한다면 달리 택할 말이 없어 보인다. 세계화라는 거창한 구호와, 혁신이니 몇 차 혁명이니 하는 깃발 아래 펼쳐지는 일련의 상황 앞에서, 세상은 유토피아보다는 지옥 쪽으로 기운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으니 말이다. 모두 같은 얼굴에 같은 것을 욕망하고, 같은 곳을 향해 달리며, 같은 것에 행복해 하는 시대. 그러니 서로는 서로에게 적이자 테러가 되어간다는 일갈에 토를 달 수 없다.

메시지는 엄중하되 그러니 뭘 어쩌자는 거냐는 질문에 뾰족한 답은 없다. 그의 말마따나 오늘날 개개인이 누리는 자유마저 자기착취 근거가 되는, 하여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나 혁명 따위가 불가능하단 점을 고려하면 그럴 거다.

결국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답은 추방된 타자를 소환하는 것. 다름을 인정하고, 소환된 타자(他者)를 환대함으로써 '동일성의 지옥'을 깨야 한다는 정도다. 한마디로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은 추방된 타자들로부터 온다는 얘기다. 그러니 지금 곁에 있는 누군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낯선 타자를 기꺼이 환대하자는 것이다. 말인즉 쉽지만 받아들이는 건 어렵다. 하물며 '다름'은 곧 '틀림'으로 읽히는 세상이고 보면, 타자 환대는커녕 추방이나 배제만이라도 말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