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2만원' 차이에 포기...삶 고단함 고스란히 반영
"따당, 따다당."오래된 형광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깜박이더니 칠흑 같던 2.64㎡(0.8평) 크기 방을 허옇게 밝혔다. 낮과 밤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을 하루 앞둔 20일 오전, 밖은 봄볕이 한창이었다. 인천 A 고시원 복도를 따라 줄줄이 위치한 창문 없는 방에는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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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시원 주인 김모씨는 "창문 없는 방은 한 달 18만원. 보증금 없고, 당장 지금 들어와도 된다"고 설명했다. '고시'원인데 공부할 책상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바로 옆 방 열린 문틈 사이로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 2명이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김씨는 "이 동네 고시원들은 침대 있고 창문 있으면 20만원이 넘어서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잘 안 찾는다"며 "여기도 창문 방 몇 개는 비어 있다"고 말했다.
한 달 2만원이 없어 볕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단기간 학업 집중력 높이기'라는 원래 목적과 달리 인천에서 고시원은 최저 주거 임대료의 상징이다. 몇백만원 보증금이 부담스러운 취약계층이 주로 고시원을 채우고 있다. 싼 방을 선호하면서 전용 부엌, 화장실, 목욕시설이 차츰 없어지더니 이젠 교도소마저 있는 창문까지 생략했다. 요즘 고시원에 창문이 있으면 '럭셔리' 취급을 받는다.
그나마 주머니 사정 나은 이들이 거주하는 여인숙, 여관도 값이 쌀수록 창문 크기나 위치가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 주거 취약계층 등 장기 투숙객이 대상인 숙박업소들이다.
머무는 방의 창 크기가 고스란히 삶의 고단함을 대변해 주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여관 등과 같이 숙박업소 객실에 사는 인천지역 내 가구는 1900개다.
인천 부평구, 남구 등 원도심 일대 오래된 여인숙, 여관 등을 살펴보니 내부 환기도 벅찰 정도로 창문이 협소한 곳이 대다수였다.
더군다나 일반상업지역에 있다 보니 건물끼리 1m도 안 되는 간격으로 서 있어 창문을 열어도 시멘트 건물이 가로막고 마는 환경이다.
모처럼 창문을 도로 쪽으로 크게 낸 여관도 어두운 단열필름을 붙여 외부 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남구 한 여관 주인은 "도심 여관에 하루, 이틀 묵는 손님들은 창문이 투명하면 싫어한다"며 "불경기 등으로 각자 형편이 변하며 여관도 하나의 주거 유형 형태로 자리 잡았지만 사람이 오래 살 만한 주거 기준은 마련하기는 힘들다"고 전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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