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아니라도 그렇거니와 차마 그것을 곁에 둘 수 없어서 일까. 산사의 화장실은 대개 멀리 떨어져 있다. 비구승들의 도량 충남의 동학사 역시 그렇다. 절 건너편에 있으며 잘 놓여진 해우교 다리를 건너서이다. 처음 대하기엔 뜻이 통하지 않겠으나 절간의 화장실을 해우소라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그 다리가 화장실로 향하는 곳임을 직감할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의 화장실은 대개가 해우소(解憂所)로 불리운다. 한자를 풀이하면 「근심을 해결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해결할 것을 풀지 못하고 헤매노라면 그보다 더한 근심이 있을 수 없겠다. 그런 만큼 뒤를 보는 일은 곧 근심을 푸는 일이니 딴은 그렇겠다고 여겨지면서 화장실 하나를 작명하는데도 직설적이지 않고 이처럼 멋을 부리는구나 생각케 된다.

 해우소라는 용어는 경남의 다솔사(茶率寺)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구석진 골짜기에 오두막 한채를 지어놓고 해결토록 하고 있는데 그곳을 해우정이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후 다른 절들도 이 명칭을 받아 해우소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이상정이 지은 「호모 토일렛」에 적혀 있다.

 그러고 보면 해우소라고 이름한 곳은 이제 흔하다. 서울 북한산의 상운사 판자집 화장실 앞에 아름다운 탱화와 함께 해우소 간판을 걸어 놓았고 선암사도 송광사도 해우소이다. 지리산 연곡사의 해우소는 내부가 사뭇 해우하면서 사색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여행가는 절을 찾으면 반드시 해우소부터 들르라 했다. 이제는 제주도의 「목석원」 조차 해우소이다.

 주거공간이 개선되면서 우리의 화장실 문화도 발전되어 있다. 곱게 꾸민 그곳에서 사람들은 근심도 풀고 사색도 하고 신문도 책도 읽는다. 고민하고 초조하다가도 그곳에서는 침착하고 냉정을 되찾아 그것을 풀어내는 경우도 있다. 하긴 현대식 화장실에서 만이 아니라 원래 절간의 해우소에서 그랬다. 그래서 그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했을까. 홍석화씨의 순회사진전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