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어사 역졸에게 분부하여 마패로 삼문 두드리며 암행어사 출두라 하니 일융이 진동하여 부서지느니 해금 저 피리, 깨어지느니 장구 거문고 등물이라. 각 읍 수령들이 쥐 숨듯 달아날제 임실현감 갓을 옆으로 쓰며 “이갓 구멍을 누가 막았는고” 하며 전주판관은 말을 거꾸로 타며 “이말 목이 근본이 없느냐 아무커나 빨리 가자”…""
 춘향전의 클라이맥스인 어사또 이몽룡의 출현으로 남원 동헌이 발칵 뒤집어지는 장면이다. 이것을 보아 탐관오리가 암행어사를 신의 존재나 되듯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반대로 백성들은 어사를 구세주처럼 맞는다. 부패한 지방 관리들이 수탈하는 면면과 민초들의 곤고했음은 정약용의 지방순행때 쓴 시를 읽어 능히 알 수 있다.
 그러니 등장한 것이 암행어사이다. 다른 어사와 달리 암행어사는 글 뜻 대로 왕명으로 신분을 숨기고 민정을 살폈다. 임금이 직접 임명하며 임무를 마치기까지 신분을 밝힐 수 없었다. 암행어사가 기록에 처음 나오는 것은 중종실록에서이고 자주 파견한 것은 인조 이후였다. 임진 병자년의 국란후 질서회복을 위해서였을께다.
 암행어사라면 흔히 두사람을 연상케 한다. 춘향전의 이몽룡과 박문수이다. 그러나 이몽룡은 픽션의 주인공일 뿐이요 박문수는 영조때의 실존인물로 명어사였다. 그는 인정미에다 뛰어나는 지략의 일화를 숱하게 남기고 있다.
 그외에 명어사로는 조광조 이황 남구만 정약용 김정희 어윤중 등이 꼽힌다. 28일자 본지 보도의 문정공 윤근수 역시 선조때의 암행어사로 명성을 떨친 분이다. 그이후 외교관으로 임진란을 전후하여 수없이 명나라를 드나들었으며 난중에는 왕을 호종하는 등 활약했다.
 양주군 회천읍 옥정리에 소재하는 사당이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화재로 주춧돌만 남아있던 것을 지난 90년 복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정문이란 현판의 삼문을 들어서면 전면 4간 측면3간의 팔작지붕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공의 청백리 사상을 길이 알리려는 뜻이 이번 지정에 담겨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