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비트코인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블록체인을 앞세운 기술적 논쟁부터 암호화폐를 둘러싼 산업 관점의 주의주장, 혁신적 기술에 따른 사회적 영향을 짚는 등 담론이 풍성하다. 담론의 바다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양비·양시론이 뒤섞인다. 내로라하는 논객들이 펼치는 논쟁의 장은 더러 말과 말이 부닥치면서 '아무 말 대잔치'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나마 크게 공감한 글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암호화폐 관련 몇몇 글이다. 이 중 경희대 이택광 교수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월호에 기고한 글은 단연 돋보인다. 이 교수는 '비트코인 신드롬'이라 할 정도로 젊은 세대들이 암호화폐에 뛰어드는 현실을 멜서스의 가설과 허버트 스펜스의 사회진화론 등을 들어 분석한다. 배경에는 사회를 형이상학 아닌 과학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 전제된다. 과학은 사실을 보여주는 방법이니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의 암호화폐 신드롬은 도덕적 타락 아닌 사회적 불평등과 전근대적 신분차별에서 온 것으로 본다. '탈출구 없는 흙수저'들에게 암호화폐는 최후의 비상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빠른 회전율에 실시간 모니터링 가능, 엄청난 등락 폭, 이에 따른 '고 위험 고 소득(high risk, high return)'. 그야말로 인기 높은 도박이 갖춘 요소가 다 들어있으며, 투자 위험요소도 모두 포함한다.

이 교수는 여기서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흙수저들에게 이 시대 경제적 시스템 역시 투전판이나 다름 없으며, 삶 또한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 흙수저들로서는 그게 투기든 투자든 '한 방'으로 팔자를 고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암호화폐 신드롬은 결국 '만연한 신분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열망'이 반영됐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결국 제아무리 창조적인 기술이라도 사용자와 사회문화적 환경 등에 따라 기능은 크게 달라진다. 블록체인 기술은 혁신적이지만, 대책 없는 불평등 경제시스템을 만나면 투전(投錢)기계로 전락하고 만다. 문제는 결국 기술 아닌 사용자와 사회적 시스템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