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무술년의 설을 쇠었다. 유년의 기억 속 설 풍경에는 초가집 굴뚝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동네 밖 신작로에는 옷을 차려입은 귀성객들이 줄을 이었다. 1970년대 초, 어느 추석 무렵에 발표된 나훈아의 '고향역'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명절하면 귀성이고 반가운 만남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명절 역귀성' 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콘도 차례(茶禮)', '해외 차례' 등의 신풍속도까지 등장했다. 이제는 설·추석마다 해외 여행객 수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언제부턴가 설·추석이면 '명절 증후군'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다. 과연 이 나라 명절은 며느리들, 그 중에서도 맏며느리의 심신을 혹사시키는 형태로 오랜 세월 내려왔다. 3형제가 서울·대구·부산에 흩어져 사는 한 지인은 3년 전부터 명절 차례를 확 바꿨다. 형제가 번갈아 가며 리조트를 예약해 간소하게 차례를 지내고 연휴를 즐긴다는 것이다. 대학 은사 한 분은 서울과 지방에 사는 두 형제가 번갈아 차례를 맡도록 바꿨다고 한다. 다 같이 명절을 즐기자는 뜻에서라고 한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김두규 교수의 한 칼럼이 회자된 적이 있다. 전통풍수를 연구하는 노 교수가 '제사는 꼭 장손이 해야?…퇴계도 주자(朱子)도 그렇게 생각 안 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황·기대승 선생간의 편지글을 인용해 맏며느리만 제사를 떠 맡는 것, 아들만 제사를 모시고 딸은 제사를 모시지 않는 것, 모두가 본래의 이치가 아니라 했다. 그리고 자신은 제사상에 탕·전·생선을 올리지 않은 지 오래라고 했다. 대신 참례자들이 먹고 싶어하는 피자·치킨·와인 등을 올린다고 했다. 향벽설위(向壁設位, 벽을 향해 음식을 차리는 것)인가, 향아설위(向我設位, 후손을 향해 음식을 차리는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이 땅의 이념과잉 폐습은 주자의 예학마저도 우리 스스로를 옥죄도록 받아들이고 거기다 한 술 더 떴다. 제사상의 밤·대추 순서까지 엄격히 정해놓고 이를 벗어나면 '근본없다' 고 매도했다. 이 땅의 맏며느리들은 이제 그 엄한 예속에 숨막혀 곧 '미 투'에라도 나설 지경이다. 콘도면 어떻고 해외면 어떤가. 자손들이 마음을 다해 머리를 조아리면 조상님의 혼백은 다 찾아온다. 조상님과 자손이 함께 하는 자리가 꼭 맏이만의 몫이어야 하는가. 아들이든 딸이든 수고로움은 나누고 함께 즐겨야 명절이다. 맏며느리까지 즐거워 조상님도 기뻐하는 '해방의 명절'을 맞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