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위원
문학 안팎에서 불온한 성이 억압의 사슬을 풀어내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의 지배와 착취의 수단으로 여겨진 성 유린의 실체가 '괴물'처럼 등장했다. 고은 시인의 불순하고 가당찮은 손길이 술집 안주처럼 회자되는 가운데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드러났다. 남성우월주의에서 오는 권력형 성추행은 욕망의 대상으로 여성을 인식하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 폭력에 따른 여성 인권이 침해를 당하는 영역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법조, 체육, 방송, 종교 등 사회전반으로 확대됐다. 여성 젠더폭력 사건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모두 상대방 의사를 침해해 이뤄진 성적 접촉, 이른바 성폭력이다.
문순태의 단편 <철쭉제>는 상위 지위의 남성이 거느리는 아래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성폭력을 표현하고 있다. 순결, 정조의 이데올로기마저 금기 위반이 허용되는 지배 권력의 이중적 잣대가 존재한다. 노비의 신분으로 판돌이의 어미 넙순이가 박 참봉에게 당하는 성폭력은 오늘날 지배세력 혹은 우월적 지위로부터의 억압과 다를 바 없다. 오래 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지역 퀸즈시어터에서 '레미제라블'을 관람했다. 초연 후 30년이 지나 최장기 공연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개관 110년이 된 이 극장의 무대에 올려진 지도 14년이 흘렀다. 입구 사인판에는 '여전히 표를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광고문구가 뮤지컬의 유명세를 대신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옥살이를 겪는 장발장이 사랑한 여인 팡틴은 어린 딸 코제트를 키우기 위해 창녀가 된다.
1907년 퀸즈시어터와 같은 해 개관한 서울 종로구 묘동의 단성사는 레미제라블 초연 다음 해인 1986년 영화 <뽕>을 개봉해 흥행에 올렸다. 나도향의 <뽕>에 등장하는 아편쟁이 노름꾼 김삼보의 아내 한협집은 돈을 위해 정조마저 팔아먹은 여자였다. 김동인의 <감자>에 등장하는 복녀, 김유정의 <소낙비>에 등장하는 춘호의 아내는 남편 학대에서 밀려난 생계유지형 매춘의 주인공들이다. 단편은 부부 가치관의 혼동을 매춘을 매개로 담아내고 있으나 모두 극단적 성폭력의 상징이다.
오늘날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권력형 성폭력은 횡행하고 있다. 최근 최 시인, 서 검사 등의 성추행 폭로는 비뚤어진 남성중심 조직문화에 대한 고발이다. '미투'운동은 지속되고 지지되어야 한다. 이제 작품세계의 성폭력이 세상으로 기어나오지 않도록 방탕의 근원을 뿌리뽑아야 한다. 성을 노리개 삼은들 인간적 온기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