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독일로 떠나 '승승장구'
인천 돌아와보니 설자리 부족
'클래식인디' 개발해 관객몰이
뮤지컬·방송 '만능 예술가'로
▲ 안갑성 성악가에게 클래식은 삶이요, 음악은 그를 계속해서 담금질하며 성장하게 하는 평생의 스승같은 존재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 지난해 12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진행한 뮤지컬 '금강 1894'에서 홍계훈 장군 역을 맡아 공연하는 모습. /사진제공=안갑성 성악가
"다른 세계도 그렇겠지만 성악 쪽도 매 순간 치열한 경쟁이에요. '나는 노래할 테니 너넨 그냥 앉아서 들어'라는 클래식 특유의 정복형 음악도 더 이상 통하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 목소리로 관객과 대화하고 싶다면 그 시대에 맞게 짜인 롤모델의 길을 걷기 보단 자신의 재능에 맞는 방향으로 뚝심 있게 걸어가세요."

독일 베를린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성악가 안갑성(37)은 클래식 무대와 뮤지컬, 방송까지 옷을 바꿔 입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4년 전 무대에 올랐던 송도 트라이볼에서 만난 안 성악가는 지난 날이 떠오르는 듯 눈빛이 반짝였다.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나 광성고 중창단 '아가페' 18기에 가입하면서 그에게 음악이란 씨앗이 뿌려졌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친형이 성악과에 진학하기까지 어깨너머로 연습하던 모습을 보고 자란 그의 씨앗은 곧 나무로 성장했다.

전 광성고 교사이자 인천일보 주필이던 조우성 시립박물관장에게 본보 기사로 논술을 배우던 때도 있었지만 교과서보단 악보를 펼치는 게 일상이고 행복이었던 그는 고2부터 본격 성악에 눈을 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에 진학했다.

한 학기를 마쳤을까, 그는 돌연 해병대를 자원입대한다. "예고 출신들과 경쟁하려니 출발선 자체가 달라 벅차더라고요. 마음을 다잡자며 채찍질하는 마음으로 백령도 6여단에 입대했어요."

2006년 '인천 우물 안에 살던 개구리' 안갑성은 또다시 돌연 독일행 항공권을 끊고 세계로 발을 뻗는다. '전범국가임에도 기술과 학문을 전 세계와 공유하겠다는 마인드'가 그를 독일로 가게 했다.

그에게 독일은 기회의 땅이었다. 베를린국립음대를 졸업하곤 뮌헨과 로젠하임, 슈타츠오퍼 나아가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등을 누비며 클래식과 오페라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가며 승승장구 했다. 나 홀로 타국살이로 인한 남모를 속앓이는 마음의 상처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독일 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그의 심란한 마음에 더 큰 생채기를 냈다. "어느 날은 해가 아침 8시에 떠서 오후 2시면 지고 또 어느 날은 아침 7시에 떠서 밤 11시에 지더라"라면서도 "독일에서 살아보니 슈만의 '시인의 사랑'이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등에 밴 독일 특유의 정서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신포동에서 먹던 쫄면과 수제비, 엄마가 해주던 김치볶음밥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그는 뼛속까지 인천사람이었다.

독일어가 익숙한 하이 바리톤, 또 인연을 맺었던 슈타츠오퍼 극장 관계자의 추천으로 국립오페라단에 캐스팅돼 2012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레타 '박쥐'의 주인공 '아이젠슈타인'역으로 금의환향한다. "외국 생활을 더할수록 정작 내 나라에서 설 무대가 없을까 막막했는데 독일에 오셨던 국립오페라단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기회를 잡았죠."

이후 2013~2014년 인천문화재단 신진예술가로 선정돼 '제 2의 금의환향'을 꿈꾸지만 생각처럼 잘 풀리진 않았다. 그가 시민을 만난 공연은 트라이보울에서 연 '동행' 등 두 차례 정도. "고향에서 활동하고 싶어 지원했고 어렵게 선정됐는데 막상 기회가 많이 주어지진 않더라"라며 "거짓말 조금 보태 아직까지 한으로 남아있다"고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관객과 만나고 음악으로 소통하기 위해 안갑성만의 '클래식인디'라는 새로운 가지를 만든다. "성악가의 음악은 정적이에요. 하지만 관객들은 동적인 음악을 원하죠. 아이와 어르신까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 홍대 앞 인디밴드들의 버스킹을 보고 무릎을 탁 친 그는, 클래식과 인디 음악의 조화를 생각했고 '이지라디오'라는 팀을 만든다. 꿈의숲아트센터, 광화문광장, 광주 유니버시아드파크, 삼척장미공원, 광원아트홀 등 클래식을 좀 더 익숙하게, 재밌게 노래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조금씩 전국을 물들였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다시 한 번 분장을 하기로 한 그는 중국 뮤지컬 '쌍화별곡'을 만나 심천, 해남도와 광저우, 베이징에서 순회공연을 하며 상대 배우 김민주와 마음을 열고 가까워져 2015년 결혼에 골인한다.

음악과 소통, 예술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인지 안 성악가에겐 더 많고 다양한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졌다. 부부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갈라콘서트'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객들을 만났고, KBS '불후의 명곡-7인의 디바' 편에 출연해 가수 손승연과 화음을 맞추며 대중에게 '안갑성' 세 글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에도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위너'와 '아이콘'의 보컬 트레이너,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창단 20주년 콘서트, 성남아트센터 자체제작 뮤지컬 '금강 1894' 등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만능 예술가로 자리 잡았다.

"아무리 전국을 다녀도 마음 한 구석엔 늘 인천에의 열망이 있어요. 나고 자란 곳이라 더욱더 갈증이 클 수밖에 없나봐요."

월미도 등 좋은 야외무대도 트라이보울, 부평아트센터 등 시설을 잘 갖춘 실내 공연장도 많은 인천인데 인연이 닿지 않아 아쉬웠다는 그. 몸도 마음도 그리고 실력까지 모두 성장했기에 더 나은 모습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안 성악가는 "클래식 인디라는 대중적인 음악코드로 관객과 대화하는 법을 이제는 알았다"라며 "인천 출신 성악가로서 또 신진예술가로서 많은 동료,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후배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렇지만 노래방에서 마이크 좀 잡았다며 덜컥 음악의 길로 접어드는 후배들은 사실 뜯어 말리고 싶어요." 현재 한예종 성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에 더욱더 힘을 실어 말하는 안 성악가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결국 내 것을 개발하지 않으면 잊혀지는 게 성악가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음악을 하고 싶다면 가장 기본인 피아노부터 시작하라"면서 "시야를 넓혀 외국에서도 정확한 노랫말에 내 목소리를 녹여 심금을 울리고 싶다면 영어를 반드시 익숙한 언어로 만들어라"라고 강조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안갑성'이란 1인극 뮤지컬엔 안 성악가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었다.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길고 넓은 스펙트럼을 모두 소화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그에겐 '욕심쟁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려 보인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