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가 끝난 연쇄 살인범
자서전 통해 일약 스타작가로
유족들 고통 지속되는 가운데
또다른 범인 등장에 미궁으로
실제 사건 있었던 일본서 제작
사회적풍토·역사·반전 맞물려
기존 원작과는 색다른 맛 전해

"안녕하십니까, 내가 살인범입니다."

공소시효가 끝나자 자신의 살인 기록을 담은 자서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연쇄살인범 '소네자키'(후지와라 타츠야)와 마지막 살인 사건 피해자의 유족이자 범인을 놓친 담당형사 '마키무라'(이토 히데아키)가 다시 만나 벌이는 추격을 담은 액션스릴러 영화 '22년 후의 고백'이 베일을 벗는다.

지난 2012년 정재영·박시후 주연의 스릴러 '내가 살인범이다'(2012)의 리메이크 작으로, 당시 관객 273만명을 동원했고 일본판 역시 지난해 현지에서 개봉해 3주간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원작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해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은 거의 비슷해 '내가 살인범이다'를 먼저 봤다면 그렇게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본 색이 더해져 또 다른 매력이 돋보인다.

"내가 22년 전 '도쿄 연쇄 살인'의 그 살인범입니다." 공소시효가 지난 5번의 연쇄살인의 살인범이 자서전을 내며 '혜성'처럼 등장한다. "살인범이 이렇게 잘생겨도 되나요?"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제목의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소네자키는 대대적인 기자회견은 물론, 사인회에 인터뷰를 하며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다.

22년 전, 살인범에게 여동생과 동료를 잃은 형사 마키무라는 미디어를 통해 뻔뻔하고 심지어 당당한 그 얼굴을 보며 치를 떨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체포는커녕 오히려 위협하는 다른 집단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일본 내 가장 '핫'한 스타가 돼 버린 살인범 때문에 되레 피해자의 유족들이 직장에서 잘리는 상황까지 내몰리며 기이한 사회현상으로 번지고 만다.

보란 듯이 얼굴을 당당히 들고 피해자의 가족 앞에 나타나고, 전국 방송에 나와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던 소네자키. 그 앞에 갑자기 '내가 진짜 살인자'라는 사람이 나타나며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진다.

원작 '내가 살인범이다'는 일본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작품이었다. 1981년 네덜란드에서 자신의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인육으로 만들었던 '사가와 잇세이' 사건이 그것이다.

사가와 잇세이는 재판에서 심신 미약으로 풀려나고, 몇 년 뒤 자신의 살해 행각을 자세히 담은 고백서 <악의 고백>을 발간했다. 원작의 정병길 감독은 살인범이 책을 내고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다는 기이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22년 후의 고백'은 연쇄살인범이 출판 기자간담회를 통해 단숨에 스타 작가가 되고 TV 생방송을 통해 진위를 확인한다는 원작 '내가 살인범이다' 서사의 큰 틀을 고스란히 옮겼다.

다만 각색한 부분도 적지 않다. 원작의 언론인들은 시청률에만 혈안이 된 밉상이었다면, 오랫동안 사건의 진상을 취재해 온 뉴스 앵커 '센도 토시오'(나카무라 토오루)는 꽤 무게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또 결말에 다다를수록 원작의 깔끔한 반전을 한 차례 더 뒤집으며 개성을 더했다.

고베 대지진과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등 극중 연쇄살인이 발생한 1995년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며 일본의 색을 진하게 담았다. 2010년 폐지된 살인죄 공소시효에 관한 법률관계를 자세히 설명하는 일본식 꼼꼼함도 관객에겐 친절하게 다가온다.

'내가 살인범이다'가 살인범의 내면이나 살인 사건을 보여주기 보다는 카체이싱 등 액션을 내세웠다면, 이 작품은 1995년 당시의 풍경을 실감나게 재현했으며, 살인 과정을 꽤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범인이 범행동안 흥분된 채 촬영하는 카메라의 흔들리는 감도에서부터 느껴지는 극악무도함이 그 실감을 더해 공포감은 배가 된다.

17일 개봉, 117분, 15세 이상 관람가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