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인천예총사무처장, 시인
살아생전에 저서 한 권 발행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생각하는지 몰라도 근년에 개인 저서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세상이 그만큼 좋아졌는지 몰라도 저자는 내서 좋고, 받는 사람은 읽어 좋으니 탓할 것 하나도 없다.
아파트 현관 입구 우편함에 담겨 있는 시집(詩集)이 참으로 반갑다. 그리고 보내준 저자에게 늘 고맙다. 자비출판을 했건, 기금을 받아 발간했건 노고가 땀으로 얼룩진 시집. 저자는 얼마나 그 글을 쓰기에 고심하고 머리가 아팠을까. 남의 일 같지 않은 일이다.

언제부턴가 습관이 못 쓰게 들었는지 책을 손에 잡으면 뒤에서부터 펼치는 버릇이 생겼다. 그 버릇이란 책의 말미에 쓴 해설이나 발문을 먼저 읽기 위함이다. 그 해설이나 발문을 읽고 난 후에 본문을 읽어나가니 남과 다르게 습관 한번 고약하다.

본문을 읽고 난 후, 해설이나 발문을 생각하면 후련한 적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편이 종종 있어 개운치 않다. 문장의 형식으로 보면 비평문이라 생각되는데, 소홀하다고 생각되기보다 "읽지 말 것"을 하는 후회가 생긴다. 공연히 자신의 이론을 펼치기 위하여 시가 동원된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 이론이라고 해봐야 서구이론을 인용한 것뿐이다. 진정한 옥석을 가리는 일은 뒷전이니, 구조적으로 향수능력을 배양받지 못한 독자 대부분은 비평에 인용된 시를 좋은 작품으로만 생각하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경향이 다반사다. 자신에게 아무런 공감과 느낌이 없는 작품(글)을 비평 아닌 비평에서는 구구절절 말(글)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부족한 자신(독자)의 소양을 탓하며 손을 놓아버리기 쉬운 것이다.

해설(발문)을 다 읽고 허망해지는 일은 무엇일까. 해설은 난무하나 평가는 실종되어 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례사적 내지 해설의 정직한 자기노출 행위다. 칭찬을 할 만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칭찬을 늘어놓을 때엔 마음을 잠시 속이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전기적 측면에 기대어 해석을 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아닐까 한다.
작품을 해석하는 데에는 편리한 방법이겠지만 시를 올곧게 해석하는 데에는 장애로 작용하기 쉽다. 치열하게 초읽기로 살아가는 작가도 자연의 감흥을 모르지 않고, 자연을 노래하는 작가(시인)라고 해서 현실의 긴장감을 모를 리 없다. 문제는 어떻게 터져 나오느냐에 달려 있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읽는 자(독자)의 성숙한 비평의 몫이다.

인용에도 허와 실이 있다. 특히 시의 인용에서는 더한 것 같다. 자기 이론구성을 위해 편의적으로 인용한 경우가 많다.
시에서 말하는 본디 뜻과 무관하게 자의적 해석에 의한 인용이 의외로 많음을 볼 수 있다. 연구방법에서 방향은 여러 갈래로 문제는 허다하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인용된 작품만 거듭 거론된다는 것이다.
서정주 그리고 김수영은 우리 시대 최고 시인으로 평가를 받는다. 두 시인의 연구는 문학매체군이나 학위논문 대상으로도 많이 다루어진다. 하나 서정주가 남긴 880여편의 시중 거론되는 작품은 1/10 정도라는 것이 현실이다. 170여편의 시를 지상에 심어놓은 김수영의 작품은 40여 편이 고작이다. 이것은 음식물 섭취로 본다면 편식이다. 이러한 편식은 고전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엔 큰 걸림돌이며, 편향적 독법 못지않게 부작용이 엄청 크게 온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성숙하지 못한 독자들까지 시를 보는 안목을 까막눈으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작가라고 해서 쓰는 족족 다 좋을 순 없다. 시의 밀도 측면, 번역 와 산문투의 측면이 그렇고 문제적 작품에 비해 감동적 작품이 부족할 수는 있다.

쓰는 사람이 있어 평이 있고 평문이 탄생되는 것이라 할 때 제일 먼저 시인의 자세를 들 수 있다. 모던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표현, 예를 든다면 자연물에 자신을 투영시켜 노래하는 보통의 경우보다 자연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주면서 자신까지를 자연의 일부로 노래하고 무위자연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시를 쓰고자 해야 한다. 그 다음 읽혀지는 시, 진실한 시, 형상이 살아 있어서 그 값을 더하는 시를 군더더기 없이 골라내는 해설과 발문이 진정한 값을 지닌다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식을 삼가고 꼼꼼하게 읽고 해석하는 탁마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 덧붙일 말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껴 울림을 토해 보라는 것이다. 소름 돋도록 담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