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때도 북한 참가에 목을 매다시피했다. 북한이 조건으로 내건 대통령 사과 등의 곡절을 거쳐 선수단과 이른바 '미녀 응원단'이 대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3차례나 "돌아가겠다"는 협박이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세계 대학생 스포츠잔치가 돼버렸다. 첫 불참 선언은 보수단체들과 북한기자단간의 몸싸움에서 비롯됐다. 이를 달래느라 당시 조해녕 대구시장(대회 조직위원장)이 정중한 사과를 해야했다. 며칠 뒤에는 북한선수단의 숙소에서 화투장이 발견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 역시 '퇴폐적 자본주의 전파 음모'로 몰려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회 끝무렵에는 경북 북부지역에 걸려있던 현수막이 문제가 됐다. 북한 대표단을 환영하는 현수막에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을 넣은 것이다. "장군님 사진을 나무에 걸어 비를 맞게 하다니." 울음을 터뜨리던 미녀 응원단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한 신문에 대구 사람들의 반응이 보도됐다. "고마 가라 캐라." "사과 대신 대구사과나 한 상자 줘라." 대회가 끝나고 대구를 떠나던 북한 대표단의 귀환 성명도 눈길을 끌었다. '민족 공조의 기치를 지켜내 정치적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간다.' 대회 기간 중 우리측에서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북한 체육계의 고위층을 비공식 만찬에 초대했다. 10여 명이 참가한 식사 자리에 이러저러한 경로로 기자도 말석을 차지했다. 술잔은 돌아도 화제는 겉돌아 결국은 정치선전이었다. 유일하게 비정치적 발언도 있었다. "이런 음식, 술 이젠 지겹습네다." 그 식당은 대구 최상급 일식집이었고 술도 최고급 양주였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여부가 다시 관심사다.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고 보는 호들갑도 한창이다. '미녀 응원단 다시 보게 되나' '모란봉 악단 초청, 한국 걸그룹과 합동공연' '김여정 오면 남북관계 안정' '평창 흥행에 청신호'…. 북한이 참가해야 흥행에 성공한다면 다른 나라 선수들은 들러리란 말인가. ▶주최국으로서 의연하게 기본으로 돌아가자.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올림픽이다. 북한의 참가가 '애원'이나 '은혜를 베푸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북한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기꺼이 스스로 참가해야 맞다. 북한도 무슨 곤란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 '참가'를 너무 강권한다면 이 역시 '무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