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소방관들은 왜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했을까? LPG탱크의 폭발을 우려해서이다. 화마의 역류현상도 감안했기 때문이다. 2층의 사우나 유리창을 깼다면 구조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인명구조의 과정과 효과를 정확히 분석하기 힘들게 됐다. 소방관들의 역투 속에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정리되고 29명이 사망했다. 이제 재난상황의 체험과 경험을 통해 '또 배웠다'는 주장은 어설프다. 사후약방문식 사고 대처, 안전불감증은 어제나 오늘이나 판박이이기 때문이다. 1971년 12월25일, 성탄절 오전에 발생한 화마로 165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을 비롯한 불과 3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근본적인 안전정책의 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상가 화재,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 경기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경부고속도 언양분기점 관광버스 화재, 경기 화성시 동탄상가 화재 등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최근에는 인천 영흥도 낚싯배와 급유선 명진15호가 충돌해 15명이 숨졌는가 하면, 제주에서는 실습에 나선 특성화고 학생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돌이켜 보자. 18년 전인 1999년 6월과 10월에는 어린 생명들을 무참히 앗아간 대형 화재참사가 있었다. 당시 경기 화성군 씨랜드청소년수련원 컨테이너 건물에서 불이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4명 등 23명이 숨졌다. 꼭 넉 달 뒤인 그 해 10월 30일 저녁 7시경 '인천호프집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인현동 상가 건물에서 난 화재로 사망한 56명 중에는 축제를 끝내고 뒤풀이로 모인 인천 20개 중·고교생이 대부분이었다. 호프집 주인이 경찰과 공무원에게 상납한 비밀장부가 폭로돼 더욱 국민의 공분을 샀다.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대형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최근 광주광역시 남부대학에서 열린 '문재인정부 안전문화 활성화정책 토론회'에서 이색적이지만 이미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이 강조한 '평생교육으로서의 안전문화'가 발제됐다. 발표에 나선 정현민 대한안전연합회장은 "전 생애 주기에 걸쳐 가정, 학교,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안전의식을 높일 수 있는 평생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로마클럽은 1968년 이탈리아의 올리베티사 부사장이었던 아우렐리오 페체이(Aurelio Peccei)를 중심으로 세계 석학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1979년 10월에는 경희대에서 '21세기의 전망과 문제점'을 주제로 로마클럽 서울회의가 열렸다.

당시 프랑스의 로제 기예망, 미국의 제임스 와슨 등 노벨상수상자와 페체이 박사를 비롯한 12명의 저명한 로마클럽 학자, 정치가 등이 참석해 21세기 미래사회의 위기와 대책을 모색한 바 있다. 로마클럽은 인류의 장래는 인간의 '학습능력'에 달려 있고, 그 역량을 어디까지 개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시각에서 '학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동안 인류의 위기상황에 대해 경종을 울려왔지만 인류의 생활태도와 문제의식은 변하지 않고 있으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다고 할지라도 문제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핵심은 인간의 '잠재능력의 계발'에 있고, 계발된 능력은 사회에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가 내려앉았고, 그 다음해 1995년 6월에는 삼풍백화점의 붕괴로 501명이 사망했다. 모두 설계와 시공, 관리 부실이 부른 예고된 인재였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학습을 촉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확정된 견해 또는 방법과 규칙을 습득하는 '유지형 학습' '충격형 학습'은 기존의 확립된 제도와 생활양식 등을 전달하는 학교교육의 대표적인 기능에 속한다. 로마클럽은 기존의 유지형·충격형 학습은 돌발적 사태와 치명적 위기를 수습할 수 없고, 지속적인 위기 해결책을 찾는 것을 단념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전문적 지식을 추종하는 충격형 학습으로 단기간에 학습하려 한다면 문제해결에 나설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적 상황에서 가치관의 충돌을 빠르게 조정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혁신형 학습'을 이용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혁신형 학습형태는 변화와 갱신, 재건, 문제 재구성 등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창조하고 공통의 이해를 발전시키는 '참여'에 있다. 우리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사거리에서 서고, 가는 것을 유지형 학습(학교교육)으로 배워왔다. 전력의 차단으로 신호등이 들어오지 않는 사거리에서도 머뭇거림이 없는 방안을 공유한다면 이것이 바로 혁신형 학습의 성과이다. 바로 혁신형 학습은 인간의 잠재역량을 개발하는 평생학습의 분야로서 의사결정의 소통창구가 된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 나타난 결과는 과학적 검증과 행정당국의 타당성으로 대중을 이해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충격을 받고 반응하는 학습에 익숙해질수록 새로운 충격에 대비할 수 없게 된다. 재해예방, 안전한 삶 등 평생학습의 영역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대중의 심판으로 적용되는 혁신형 학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재해는 미완의 과제일 뿐이다. 재난의 해, 2017년 아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