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때로 재미로, 때로는 진지한 자세로 역사를 앞에 두고 가정을 해본다. "만약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만약 일본보다 우리가 먼저 근대화를 했더라면, 만약 영국이 덩케르크에서 무사히 탈출하지 못했다면"과 같은 상상은 이미 일어난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무의미하며 때로 과거의 잘못된 행위를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오용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만약'을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오늘은 어제가 뿌린 씨앗이며 역사는 언제나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흡사한 순간이 반복될 때, 나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할 수 있을까를 배우기 위한 공부가 역사의 효용이다. 한 해의 끝인 12월 달력을 앞에 두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마음이 절로 들게 마련이다.

특히 올해 12월20일은 달력에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만약 지난해 12월9일,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바로 내일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을 것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의해 최종적으로 탄핵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구치소에 503호라는 수인번호로 수감되어 있는 전직 대통령이 2018년 2월 24일 자정까지 청와대를 지켰을 것이다. 국정농단사태가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 머릿속에는 '탄핵'이란 단어가 꽤 여러 차례 떠올랐겠으나 실제로 탄핵이 이뤄지기까지는 모두가 '설마' 또는 '혹시'라는 마음을 품었었다. 대통령의 아버지는 어쨌든 이 나라 국민 다수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한다는 사람이었고, 대통령 역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심지어 탄핵이 결정된 현재까지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설마'했던 국정농단의 실체가 밝혀졌고, '혹시'나 했던 탄핵도 이루어졌다.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겨울이지만, 작년 겨울도 못지않게 추웠다. 엄동설한의 추위를 무릅쓰고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 한 자루에 의지해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밝혔다. 지금쯤 우리는 "만약 그날 내가 촛불을 들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지 자문해 볼 때다.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