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효의 문화 이야기] 31.시성 두보 번역서, 보물 제1051-1호
[김진효의 문화 이야기] 31.시성 두보 번역서, 보물 제1051-1호
  • 최현호
  • 승인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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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보언해.
'붉은 문 안에는 술과 고기냄새 풍겨오는데 / 길가에는 얼어죽은 사람들의 해골 뒹구네 / 영화로움과 빈곤함이 지척으로 다르니 / 슬프고 한탄스러움 마음 이루 다 말할 수 없네'<자경부봉선현영회오백자>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3(分類杜工部詩諺解卷十三)은 성종의 명을 받아 홍문관 유윤겸 등이 두보의 시를 번역한 것이다. 공부원외랑 벼슬을 지낸 두보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13번째 책이란 뜻이다.

한글로 표현된 유창한 문체와 풍부한 어휘 등이 국어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보물 제1051-1호로 경기도 박물관에 있다.

7살부터 시를 짓기 시작한 두보는 20세부터 전국을 유람했다. 간신들이 권력 독점을 위해 훌륭한 인재는 뽑지 않아 과거에는 낙방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열 살 어린 양씨와 결혼했는데, 지극히 사랑해 늘 함께했다.

또 양귀비의 미움을 사 조정에서 쫓겨온 시선(詩仙) 이백과 1년간 떠돌며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하지만 '허리 굽혀 권력에 아부하기 싫었던' 이백은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주요 관직에 올라 요순시대를 만들고 싶었던' 시성(詩聖) 두보는 수도 장안으로 갔다.

'조정에서 돌아오면 봄옷을 잡혀놓고 / 매일 강 언덕에서 만취하여 돌아온다 / 가는 곳마다 외상술값 있지만 / 인생 칠십은 예부터 드문 일'〈곡강〉

노자의 후손인 당 황실에 도교를 칭송하는 '삼대례부'까지 지어 벼슬길에 오르지만, 두보는 뜻을 펼치지 못했다. 민중의 고통을 지켜본 두보는 관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의 1500편 시는 대부분 사회 비판적이었다.

결국 폐병·중풍 등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지붕없는 배를 집 삼아 떠돌던 두보는 59세에 쓸쓸히 죽었다.

혹자는 "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깨우쳐버린, 어른이 된 소년의 절규"라고 했고(서은숙), 어떤 이는 "비오는 날 고무신을 끌고 가도 좋을 친구를 가지고 싶다"고 노래하기도 했다.(유안진)
아마도 영혼이 맑아 아픈 철부지만 시인이 될 수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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