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
경기도 용인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 공직자를 만났습니다. 올해 초 서기관으로 승진해 일해 온 그가 정년을 5년이나 남기고 용퇴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요,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했으면 이제 좀 쉴 때도 됐지요." "구청장이라도 하고 명퇴해도 충분하잖아" "아닙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른 게 우리 후배들 덕분인데 자리를 비워줘야지요. 이제 봉사하는 삶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용퇴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겠지만 후배들을 위해 욕심을 내려놓은 그가 새삼 존경스러웠습니다.
해마다 상·하반기엔 공직자 명예퇴직 문제가 공직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곤 합니다. 정년퇴직은 희망 사항이지요. 정년을 1~2년 앞두고 명퇴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명퇴이지 반강제 퇴직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명퇴하지 않는 공직자도 있지요. 이들도 선배의 명퇴 덕에 승진한 사람인지라 염치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일. 선배가 명퇴하지 않는다고 후배가 험한 말로 인터넷을 도배하는 일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도 세월이 지나면 명퇴 대상자가 될 테니까요.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공무원도 상품입니다. 누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됨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평가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 수준이나 가치에 대한 견해는 대부분 일치합니다. 어떤 직원은 여러 부서에서 추천하지만, 다른 어떤 직원은 어느 부서로부터도 추천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심하게는 특정인을 다른 곳으로 방출해달라는 요구가 있기도 하지요. 그런데 평가가 달라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주변의 도움이나 지원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우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공무원도 상품입니다. 그것도 공공의 상품이므로 일반 이상이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여러모로 국민으로부터 비판과 지적을 많이 받는 공무원인데, 잠시 위임받은 권한을 특권인 양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공무원 수가 늘어난다고 반드시 행정서비스가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정말로 국민의 머슴으로 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공무원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훌륭한 분도 많습니다. 수원시 부시장으로 일한 어느 분은 부인도 경정까지 지낸 경찰 간부였지요. 슬하에 자식이 없었지만, 이것도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이웃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돕기 시작했는데, 30년 동안 두 분께 도움을 받은 학생이 50명이 넘는다고 하지요. 경기도청에서 국장으로 일했던 또 한 분은 지금도 사기업에서 일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천주교 기념관을 짓는 모임의 회장으로도 봉사하고 있지요. 이웃을 위해 열정을 쏟는 모습은 향기롭습니다.

공무원만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평생을 공들인 사람의 지식과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지요. 이들이 능력을 재 점화해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뭐 거창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요. 전문적인 일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는 것이면 더욱 좋겠지만, 꼭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어렵게 이루었던 꿈을 다른 사람이 쉽게 이룰 수 있게 돕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퇴직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현실 속에서 봉사는 또 다른 삶의 활력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게 사람 사는 것이지요.

산다는 게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는 게 아닙니다. 인생은 결코 간단치 않은 旅程이지요. 그래도 사력을 다해 나름 성공과 성취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일손을 놓아야 할 때가옵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이뤘다고 만족하면 그건 잘사는 게 아니지요. 퇴직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자신의 꿈을 넘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지요. '꿈 넘어 꿈'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퇴직이 새로운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고 꽃피우고 열매 맺는 인생 제2막의 힘찬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