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들에게 '가면'을 씌웠나
여성혐오·동성애 공격
차별을 낳은 우대 정책
항의자는 '마스크 착용'
사회현상·과제 꼬집어
▲ 새얼문화재단, 434쪽, 9000원


<황해문화> 겨울호(통권 97호)가 특집으로 '젠더 전쟁'을 준비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여성들의 분노와 조직적 대응, 이에 맞선 이른바 '일베'를 비롯한 여성 혐오자들의 역공격들로 촉발한 젠더 사이 갈등을 배경으로 마련됐다.

특집은 최근 몇 년 간 증폭된 여성혐오와 젠더 갈등의 문제에서 기원하지만, 실린 글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듯 여성혐오의 문제가 일시적·우발적인 것이 아니며 일정한 경제·사회·정치적 요인들이 누적된 성격을 띤 것임을 드러내고 공론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의 표현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정치적 주체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신경아(한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총론에 해당하는 '젠더 갈등의 사회학'에서 현재 전개되는 젠더 전쟁의 상황 및 그 사회적 요인들을 요령 있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젠더 갈등은 길게는 20년, 짧게는 지난 10년간 전개된 사회적 실천의 결과이며, 정책 실패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 핵심 이유는 '차별을 인정하기보다 우대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여성 정책은 불평등과 차별의 시정을 위한 정책보다는 여성에 대한 시혜 정책으로서의 성격을 띠어 왔으며, '우대 정책'이 오히려 차별을 방치하고 누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영미(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노동시장 피해자 경쟁과 여성혐오'에서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사회적 뿌리를 밝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서구나 우리사회 모두 여성혐오의 뿌리에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재편이 존재한다. 서구에서는 신자유주의 시기가 도래한 이후 경쟁에서 탈락한 남성들이 가장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여성혐오 현상이 나타났다.

△김영희(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소장)

'몰래카메라 : 시선의 주체와 포획된 신체'에서 최근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폭력을 주제로 삼으면서 시선의 폭력이라는 문제를 살피고 있다. 한동안 '소라넷'이라는 이름의 국내 최대의 불법 음란물 유통 사이트가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100만명이 넘는 회원들이 각종 불법 음란물을 게시하고 유통하면서 20년 가까이 '성황'을 이룬(?) 이 사이트는 2016년에 폐쇄됐지만, 그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변형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소라넷 폐쇄 이후 불법 음란물과 영상은 훨씬 더 은밀하고 산재된 형태로 계속 유통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훔쳐보는 시선의 일부만을 범죄화하고 어떤 시선은 정상적인 것으로 묵인하는 젠더 위계질서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필자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선희(경계너머교육센터 대표)

'퓨리오숙 현상의 이율배반과 젠더 전쟁의 주체들'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여성 연예인의 별명 '퓨리오숙'에서 이야기를 끌어낸다. 영화 '매드맥스'에서 독재자에 맞서 사람들을 해방의 땅으로 이끄는 여전사 퓨리오사의 이름을 본 따 '퓨리오숙'이라고 불리는 이 연예인은 가부장 구조를 '가모장'으로 표현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아내의 호통에 남편이 순응하는 것을 보고 여성 시청자들이 대리 만족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는 가부장의 희화화된 전도물에 불과하며, 가모장 퓨리오숙은 현실의 젠더 전쟁에서 여성 전사의 모습을 형상화하기에는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모순과 혐오를 넘어 페미니즘 정치를 향하여'에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전개되어온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과 그로부터 1년 뒤에 일어난 여성 왁싱사에 대한 살해사건은 우리 사회 여성혐오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영이 주목하는 것은 두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 한결같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타 단체와의 연대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여름, 86일간의 본관 점거 투쟁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에서도 학생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것은 이른바 '일베'를 비롯한 남성 중심 온라인 사이트에서 '신상이 털려' 각종 성희롱에 시달리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특히 '동성애'가 보수 집단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데 반해, 문재인 정권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현 시점에서 보면 더 그렇다. 따라서 "'진짜 여성이 누구인지'를 대신해 '지금 누가 여성의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라는 필자의 말은 많은 울림을 낳는다.

△비평 :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쉽게 풀기 힘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현상들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부인의 시각에서 10여년 동안 사랑과 신뢰를 받던 MBC가 어떻게 무너지게 됐는지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박성제(MBC 해직기자)의 'MBC 몰락 10년사-'만나면 좋은 친구'는 어떻게 '엠빙신'이 되었나', 상지대의 두 번째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요인들을 열거하며 상지대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교육부에 있음을 낱낱이 밝히는 정대화(상지대학교 총장직무대행)의 '상지대 민주화 투쟁의 교훈과 과제', 종교인 과세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해 왜 종교인 과세가 필요한 지 상세하게 논증하는 이진오(새나무교회 담임목사)의 '종교인 과세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김애령(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은 '인문한국(HK)이라는 실험'을 통해 지난 2007년에 시작되어 올해 8월로 1기 사업이 마무리된 인문한국 사업의 의미와 한계를 다루고 있다.

진태원('황해문화' 편집위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은 권두언 '젠더 전쟁과 을의 민주주의'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대면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이 바로 그런 시기라고 생각했다.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군사 독재의 강고한 틀이 시민의 힘에 밀려 깨지는 것을 감동적으로 체험했다"며 "생애 또 다시 그런 시기를 경험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지난 겨울 다시 한 번 내가 역사의 거대한 현장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