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뛰빵빵 ~ '예술버스' 재미있어요"

▲ 서해근 설치·회화작가
창의·협동력 키우는 예술교육 프로그램 … 현대미술작가와 학생들 즐거운 시간


'빵빵!'. 예술 작가와 미술재료를 싣고 달리는 '아트버스 캔버스'가 인천 한누리학교에 도착했다. 아트버스 캔버스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예술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사회적 기업 '캔 파운데이션'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체험 기회가 적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대 미술작가가 찾아가 함께 작업하며 예술경험은 물론 창의성과 협동력을 쌓도록 도와주는 사업이다.
이번 11월엔 인천가톨릭대학교가 협력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의 후원, 개인후원자들의 기부로 전국 최초 초·중·고 통합 기숙형 다문화학교인 인천 한누리학교에서 지난 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매주 화·금요일 '나의 이야기를 담은 OOO'라는 주제로 서해근 설치·회화 작가와 박진식 사진작가가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차렷! 열중 쉬어, 차렷! 작가님께 인사!"
지난 21일, 오늘도 8살부터 10살까지의 저학년 친구들 2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나이지리아, 필리핀, 러시아, 예맨, 미얀마, 리비아,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재잘대지만 신기하게도 다들 대화가 통해 깔깔대느라 정신이 없다. 화요일 오후 1시만 되면 아이들은 국제예절실에 모여 거대한 비행기를 만들며 예술혼을 불태웠고, 오늘 드디어 완성하는 날이라 다들 더욱더 들떠있는 분위기다.
웅성웅성 왁자지껄 떠들다가 비행기를 꺼내놓으니 하나 둘 씩 비행기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워낙에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이고리(10·우즈베키스탄)군은 비행기 날개를 이리저리 뜯어보며 떨어진 부분을 테이프로 연결한다.
김디마(8·우크라이나)군 역시 가위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도와준다.
어린 친구들이다 보니 집중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지만, 선생님이 '한누리!'라고 주의를 주자, 친구들과 장난치던 프레셔스(10·나이지리아)군은 순식간에 '얼음'이 된다. "나중엔 자동차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 프레셔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수다삼매경에 빠지고 만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테이프를 길게 당겨 이곳저곳에 붙여 몸체에 날개를 더하고 나니 형형색색 비닐에 20명이 손수 그린 그림과 그들의 이름이 적힌 '나의 이야기를 담은 비행기'가 드디어 완성이다. "날개가 너무 위에 붙었어!" 조그만 실수에도 모두들 싱글벙글, 직접 거대한 비행기를 만들었단 자체만으로 이미 벅찬 아이들이다.
러시아 출신의 발리나(8)양은 빨강·분홍 비닐에 아기자기한 나비와 꽃을 그려 넣었다. 자신의 그림을 만지작거리며 '예쁘지 않느냐'며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아이들의 비행기가 1층 로비에 걸려 공중에 떴다. 서 작가도 아이들도 3주 간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 '애지중지 내 새끼' 비행기를 바라봤다.
"이제 다음 주 화요일부턴 우리 못 봐요.", "아~ 오늘 마지막(이에요)?" 아바스(10·예맨)는 그동안 서 작가와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3주간의 창작 미술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모두 수료증을 받았지만 아쉬운 표정이다. "저는 도라에몽을 그렸어요!", "전 태극기를 비행기에 그렸어요", "내가 가위로 자르고 붙여서 큰 비행기를 만들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지난 수업을 되뇌며 자축의 박수로 서 작가에게 감사를 전했다.


[인터뷰 / 김정심 초등부장] "쭈뼛대던 학생들, 적극적인 참여에 감동"

"우리 아이들이 언제 이런 작가님들을 만나 작품을 만들고 수업을 듣겠어요."
김정심(57) 초등부장은 3주간 작가와 함께 수업에 참여한 20여명의 학생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또 활발하게 작품 활동 중인 작가가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이끌어준 것만으로도 큰 가르침이 됐다고 생각한다.
김 부장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서툴지만 그림을 그리고 직접 오리고 붙여 20개의 꿈이 실린 비행기가 완성됐다"며 "첫날엔 낯설어 쭈뼛대다가 어느 샌가 수업에 스며들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37년 째 교직에 몸담은 김 교사는 지난해 9월 한누리학교로 와 초등부 부장을 맡고 있다. 초등부는 22개 국적을 가진 44명의 친구들이 모여 있다. 처음엔 언어도 문화도 모든 게 다른 학생들을 돌봐야 할 생각에 막막했다는 그. 하지만 '한국에 산다'는 공통분모 하나만으로 자연히 친해지고 마음을 열어 빈자리를 서로 채워주는 모습에 더욱더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돌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도 학생들과 '한국어'로 씨름하지만 김 부장은 다문화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점차 자신감을 찾아가는 모습에 행복하다.
"아직도 한누리학교를 모르는 다문화가정이 많아 아쉬워요.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또래들을 사귀고 함께 한국 문화를 배우고 적응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 서해근 설치·회화작가] "꼬마작가들 돕기만 했을 뿐 … 오히려 배웠다"

아트버스 캔버스만 세 번째 참여하고 있는 서해근(42) 작가는 "이번 수업을 마치면서 유난히 행복하고도 뿌듯했다"고 말했다.
수업 첫 날엔 생각보다 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던 터라 막막했지만 이제는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아이들과 친구가 됐기 때문이다.
서 작가는 "특히 이번 작업은 제작부터 완성까지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의미가 크다"라면서 "엉성하고 서툴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3주 동안의 노력의 흔적이 돋보여 기쁘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캔 파운데이션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늘 전투기를 만드는 작업을 해 왔다. 전투기와의 애증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이 뭘까?'라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냉전시대도 지났는데 수조원을 들여가면서까지 군수용품, 전쟁무기를 만든다는 게 굉장히 어리석고 큰 낭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비용을 복지나 필요한 곳에 쓰면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대상이 어린 다문화 학생들이다 보니 누구나 좋아하는 '꿈을 실은 비행기'를 만들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적.
그는 "'어려서 하기 힘들 거야'라는 선입견이 오히려 아이들의 잠재력을 방해하더라"라며 "자신의 이름과 그리고픈 것들로 비행기를 채워나가며 잘 따라준 아이들에게 고맙고, 한편으론 배운 점도 많아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