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현 정치부 부국장
지난 16일 여의도 선주협회 대회의실에서는 한국해사법정중재활성화 추진위원회 주최로 '제5차 해사법원 설치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중요한 제안이 나왔다. 서울에 해사법원 본원을 설치하고 인천과 부산, 광주에 지원을 설치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그동안 해사법원 본원 설치를 두고 부산과 인천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해사법원 설치의 필요성을 최초로 제안했던 해법학회가 중재안을 들고 나왔다.
해법학회는 크게 ▲법원의 구성(심급 및 설치) ▲전속관할 ▲토지관할(재판적) ▲심판범위 등의 문제와 법률수요자까지 감안해 해사·항공 전문법원 설치 방안을 제시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일단 인천과 부산 간에 펼쳐졌던 유치경쟁을 피하고 지역 사정을 감안한 중재안이라는 것이 그 자리에 참석했던 대다수 참석자들의 평가다. 그러나 부산지역의 반응은 달랐다. 5차 세미나 이후 부산과 여의도에서 잇따라 열린 해사법원 관련 세미나를 보면 알수 있다.

지난 20일에는 부산시 주최로 부산시청 소회의실에서 '해사법원 부산 설립을 위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틀 뒤인 22일에는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해사법원 부산 설립을 위한 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이 세미나는 부산지역 여·야의원들이 공동으로 연 것으로 해사법원 유치를 위한 대내·외 공감대 형성과 추진력 확보가 목표다. 여전히 부산시민과 정치권은 해사법원의 부산 유치를 고집하는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부산지역 언론의 논조를 살펴보면 해사법원을 둘러싼 인천과 부산 간 경쟁을 놓고 "수도권의 몽니"로 치부하며 부산유치의 당위성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해법학회 자료와 실제 해상분쟁 처리 건수를 살펴보면 해상분쟁 전체건수의 70%가 수도권 지역에서 발생하는 점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항공분야까지 합하면 수도권 지역의 분쟁요소는 더욱 증가하게 된다. 수도권을 대표하는 인천의 중요성이 그만큼 가중되는 점을 고려하면 해법학회 중재안이 왜 설득력을 얻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부산과 인천의 반응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먼저 부산의 경우 부산시와 지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내부에서는 부산시민과 지역 관련업계 등이 모두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 있다. 단일화한 집단 파워를 형성하며 대외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부산과 여의도에서 잇따라 열리는 해사법원 관련 세미나 등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반면 인천의 경우 아직도 해사법원의 인천유치는 남의 얘기로 치부되는 경향을 갖는다. 인천시가 포함된 '해사법원 인천유치를 위한 TF(태스크포스팀)'에는 지역업계 관계자들과 언론, 시민단체만 참여할 뿐, 정치권과 시민들의 참여는 저조하다. 국회의원들은 법안추진 과정에서조차 일관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상반된 입장을 담아낸 법안을 발의해 논란을 빚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부산의 접근방식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부산이 단일화한 논리와 대오로 적극적이며 집요한 대외활동을 통해 명분과 파워를 키워나가는 데 비해 인천의 소극적인 태도는 해사법원 설치를 담아낼 명분과 동력을 얻기에는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해사법원은 더 이상 지역 간 '파워게임' 성격으로 치부돼서는 곤란하다. 인천은 항만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 물류도시다. 제조업과 첨단산업단지들이 들어서는 이유도 수도권의 유일한 항구와 국제공항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련법률과 분쟁처리를 맡을 기관의 필요성이 높아가고 있다. 여기에 경쟁국인 중국의 해사분쟁 처리건수 또한 연간 1만5000건을 웃돌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중국과 물류경쟁을 벌이는 인천에 해사법원을 설립해야 할 당위성을 반증하고 있다.
국가 전체의 비전과 현실의 생각한다면 해사법원의 문제는 더이상 어느 한 지역의 몫이라는 생각은 소아벙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정치적 힘을 앞세워 강행하면 자칫 지역패권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해법학회 중재안은 바로 이런 상황을 고려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해사법원 설립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해법학회 중재안 또한 해법은 아니다. 다만 지금 펼쳐지는 논의의 결론이 향후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부산과 인천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모두 숙고해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