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는 특정한 하루가 큰 의미를 지닐 때가 있다. 나라마다 역사적으로 특별한 하루를 국경일(國慶日) 또는 국치일(國恥日)로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역사적 의미를 명확하게 개념 짓기에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사회에서는 역사적 사건을 그저 날짜로 호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4·3, 5·18, 6·25 등 역사적 의미가 사회적으로 고정되기에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사건이 있다. 그런데 역사에서는 특정한 날에 사건이 반복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11월 9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다. 1938년 11월9일, 독일에서는 이른바 '수정의 밤(Kristallnacht)'이란 사건이 있었다. 매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실제로 이날 밤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유대인에 대한 광란의 박해와 린치가 가해졌다. 역사학자 막스 라인은 "수정의 밤이 찾아왔고…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1989년 11월9일, 독일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당시 동독 공산당 선전담당 비서였던 귄터 샤보브스키는 여행자유화가 언제부터 실시될 예정이냐는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을 받고, "내가 알기로는… 지금부터"라고 말실수를 했고, 이 날 이후 28년간 독일을 가로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독일에서 11월 9일은 이처럼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오늘도 우리에겐 특별한 하루로 기억할 만하다. 1972년 11월21일 이 날,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가결되었고, 1997년 11월21일 이 날,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근대화란 산업화와 민주화의 양 날개로 이루어진다. 둘 중 어느 하나가 취약해도 근대사회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1972년 우리는 민주국가의 주권을 포기하고 제왕적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을 넘기는 참사를 자초했다. 이날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앞으로도 흘려야 할 피와 희생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재벌과 관료란 두 모범생이 주도한 우리의 산업화가 얼마나 취약한 것이었는지 잘 보여주었다. 이날은 우리 국민에게 홀로코스트 같은 대재앙이었고,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황해문화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