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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했죠. 37명의 어린 여자들이 한꺼번에 화장실에서 불에 타 죽었는데 겨우 며칠 기사에 나오는가 싶더니 사라져버렸더라고요. 그건 그 기숙학원을 폐쇄하겠다는 통보와 같은 거였어요. 정확한 원인이나 대책이 아니라 폐쇄처럼 그냥 막아버리고 덮어버리는 거죠. 그렇게 잊히겠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도요. - 양진채 소설 <베이비 오일> 중에서

인현동 화재 사고를 잊고 있다가 신문기사를 보고서야 아! 한탄을 내뱉었다. 학교 축제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던 아이들이 한순간 화재로 죽임을 당했다. 그건 '죽었다'가 아니라 '죽임'을 당했다가 맞을 것이다. 거기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이 누군가에게 분명이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보도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주먹을 쥐고 무책임한 누군가를 욕했다. 거기는 내가 수차례 지나다닌 길, 근처에서 밥을 먹고, 통닭을 먹던 곳, 인천의 한 곳이었다. 그 몇 년 전에는 경기여자기숙학원의 화재가 있었다. 또 인현동 화재가 있기 몇 달 전 씨랜드 참사가 있었다. 그리고 세월호가 있었다. 모두 아이들이었다. 한 순간도 죽음을 생각할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서서히 잊혔다. 추모비의 글씨가 흐려질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누군가의 가슴에는 화인처럼 더 또렷한 증거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잊는다. 아무런 대책이나 방안도 없이 그 일은 희미해진다.

아이들은 여전히 교실에서 오직 더 나은 대학과 학과를 가기 위해, 그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책을 들여다보고, 어두운 밤, 학교를 나선다. 그 아이들에게 꿈은 저 먼 별처럼 아득하다. 시간이 흘러 이 교실을 벗어날 수만 있기를 바랄 뿐. 그렇다고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아가며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이들 수능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험을 잘 보라고, 원하는 대학, 가고 싶은 학과에 가서 해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기를 응원하지만, 그렇게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답답하다. 잘 버텨왔다고, 이제는 성인으로서 네 삶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부끄러운 어른이 이렇게 응원을 할 수밖에 없어 또 부끄럽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