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동 장군의 손녀딸 최정선 여사가 최 장군의 평전을 앞에 둔 채 그의 업적을 설명하고 있다.
▲ 최정선 여사는 '홍범도 장군을 봉오동 전투의 주역으로 그리는 영화의 제작을 중단해 달라'는 장문의 글을 직접 써놓았다.
▲독립운동가 집안의 고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최진동의 가족도 여느 독립운동가의 집안과 같이 고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일제 패망 뒤 그 자리를 이은 중국 공산당은 그의 가족을 대지주로 몰아세웠다. 집안의 토지는 몰수당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최 장군의 둘째 아들 최국량은 해방 이후 가족을 중국 땅에 둔 채 남한으로 피신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가장이 떠난 뒤 중국에 남겨진 가족들은 연변 석현에 있는 친척 집에 의탁해야 했다.

▲최정선 여사의 중국 생활
봉오동에서 태어난 최국량의 딸 최정선 여사도 어머니 손에 이끌려 고향을 떠났다. 해방 때 일곱 살이었던 최 여사는 이때부터 평생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 여사의 가족들은 두부를 만들어 팔고 종이공장에 나가 온 종일 노동을 해야 했다. 중국 대륙을 휩쓸었던 문화혁명 때의 고초는 말로 다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홍위병의 극성에 떠밀려 최 장군의 묘지를 파헤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 장군의 손자 손녀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고국 땅을 밟은 최 여사
다행히 한국과 중국이 1992년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최 장군의 업적이 조금씩 재조명됐다. 최 여사는 2005년 국내로 봉환된 할아버지 유해를 따라 고국 땅을 밟았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일흔을 넘긴 고령의 최 여사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없었다. 정부에서 지급받은 정착금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던 중 갑자기 병마가 닥쳐왔다. 심근경색으로 혈관에 스탠드 2개를 심는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건강은 회복했지만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국내에서 불법 체류하던 아들 때문에 동 사무소의 생활보조금이 끊길 위기도 겪었다.

▲인천 간석동으로 이주
병치레 탓에 수중에 남은 재산이 2800만원으로 줄었다. 그 돈으로는 성남과 서울에서 비새는 지하 전세방도 구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인천의 전세 값이 싸다는 소문을 듣곤 5년 전 간석동으로 이사를 했다. 한 달 생활비는 동 사무소에서 영세민에게 지급하는 50만원으로 충당했다.
인천 생활에 익숙해지던 지난 9월, 이번에는 날벼락 같은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
소변에서 피가 나와 병원을 찾아가자 "서둘러 큰 병원을 찾으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서울대병원에서 콩팥의 일부를 떼어내는 대수술 끝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3개월에 한번 씩 정기검사를 받겠다는 다짐을 해야 했다.

▲아쉬운 정부의 지원
몇 달 전부터 독립유공자유지계승유족회에서 매월 20만 원의 성금을 보내오고 있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성금으로 보내주는 이돈은 언제 끊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년에는 정부의 지원금이 조금씩 나온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유공자의 가난한 삶을 방치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덕분이다.
이마저도 여기까지가 전부다. 더 이상 지원받을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독립유공자 예우법은 독립유공자 지원을 손·자녀 한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최 장군에 대한 지원은 이미 다른 친척의 몫으로 돌아간 상태다. 이 때문에 지금의 제도 아래에서는 최저 생계비 이하의 지원 외에는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임대주택에 대한 작은 기대
다행히 이 지역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국회의원이 최 여사의 거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윤 의원이 LH에서 추진 중인 임대주택을 주선하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최 여사는 요즘 반지하 전세방을 벗어날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고국에 돌아와 어렵게 살고 있지만 늘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어요"
위대한 독립군의 자손을 홀대하는 고국이지만, 최 여사는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대한민국은 제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줬고, 영원히 이방인으로 따돌림 받는 신세는 면하게 해 주었어요"

▲최정선 여사의 당부
최 여사는 최근 제작되고 있는 봉오동 전투 영화 내용에 대해 섭섭함을 나타냈다.
홍범도 장군을 이 전투의 주역으로 표현하려는 이 영화가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최 여사는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최진동 장군"이라고 잘라 말한다.
최 장군이 가산을 털어 무기를 마련하고, 자신의 근거지인 봉오동의 지리·지형을 이용해 일본군을 전멸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여사는 이런 내용을 빼곡히 써 놓은 스케치북 3장을 내 보이며, "진실을 알려 달라"는 간곡한 당부를 되풀이했다.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