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사회부 기자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과 문제점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때는 언제일까. 매년 10월쯤 국회가 주도하는 국정감사 시즌이 아닐까 싶다. 이 시기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300명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국정 전반을 진단한다. 의원실이 스스로 기획한 아이템, 부조리한 일을 당한 이의 공익제보, 각종 조사 결과가 한꺼번에 분출되면, 여론은 거대한 물결이 된다.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던 공공기관들은 그렇게 간신히 한 걸음을 뗀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나아간다.

인천에도 국정감사의 물결이 지나갔다. 그런데 '심심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인 듯하다. 지난달 27일 진행된 인천지방경찰청 국정감사도 그랬다.
의원들의 말을 짚어 보자. 한 의원은 '시민이 행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이뤄주셔야 한다'라는 덕담과 함께 평이한 질문을 던졌다. 다른 의원은 각종 범죄통계를 들어 노인범죄와 공공시설에서의 범죄가 많다며 예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의원은 전반적인 치안지표가 양호하다며 칭찬했다.

이날 예정시간을 30분쯤 넘겨 시작된 국정감사는 1시간 남짓 지나 종료됐다. 현직 경찰관 체포에 대한 추궁이나, 올해 초 전국을 뒤흔든 연수구 초등생 살인사건에 대한 질의는 거의 없었다. 노트북을 접으며 어떤 기자는 "한가위 명절 덕담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국회가 항상 질책만 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국정감사는 1년에 한 번이다. 국회의원들이 무난한 국정감사를 치르는 동안, 인천경찰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잠재된 모순이 아무 견제 없이 올해를 '무사히' 넘겼을 수도 있다. 결국 이로 인한 해악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인천지방경찰청은 이번 국정감사에 대비해 두 차례 리허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 담당자는 기자의 전화를 못 받다가 저녁 늦게 연락해 "너무 바빴다. 미안하다"라고 했다. 도리어 전화한 사람이 죄송스러웠던 사과였다. 이들의 노고는 고작 한 시간짜리 국정감사 때문이 아니다. 경찰 수뇌부는 감사가 끝난 뒤 웃으며 자리를 떴지만, 누군가는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했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히어로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