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도시 뒤집어 봐요"
▲ 인천 송도 트라이보울 앞에서 '이야기만물상'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박혜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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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민 작가.

"중국 같긴 한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저기 차이나타운 아니야?"

인천 동구 추억극장 미림 내 한 편에 마련된 작은 상영관 '두 번째 숲'에서 조금 색다른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왔다. 언뜻 보기엔 중국인데 너무나도 익숙한 공자 상이 보인다. 분명 경기도 안산 광장인데 인도 같기도 하고 관객들은 흥미로우면서도 혼란스럽다.

지난달 19~30일까지 이곳에선 'H PARK 여행사'와 '만국거리를 지나 출구'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허구의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가공한 영상이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 관객들을 즐거운 혼란에 빠뜨린 영상의 주인공 박혜민(34) 작가를 만났다.

"한국 안에서도 수많은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한국에서 세계 여행을 해 보자'는 콘셉트로 시작했죠."

'H PARK 여행사'에선 중국 쑤이와 인도 씨올라, 아프리카 씨엘루르를 둘러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이 지역에 대한 정보는 '0'이다. 중국은 있지만 쑤이는 없고, 인도는 있지만 씨올라는 없다. 박 작가는 "서울을 각각 중국말, 인도어, 아프리카어로 바꿨을 때 발음되는 곳들로 가상의 도시를 정했다"며 "한국에서 찾은 중국, 인도, 아프리카의 문화와 장소, 음식들을 소개하는 게 'H PARK 여행사'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보낸 3년의 시간 덕분에 'H PARK 여행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나라에서 다민족이 형성한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 한 도시 안에서 도시 특성에 맞춰 변형되면서도 유지되며 어우러지는 데 흥미를 느꼈기 때문.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같은 현상이 이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여행'이라는 유희적 요소와 시각적으로 더 재밌게 표현하고자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박 작가의 야심찬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만국거리를 지나 출구'다. 2013년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로 오면서 거리 속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사건·사고도 많지만 사람 냄새 폴폴 나는, 늘 시끌시끌 계속해서 일들이 일어나는 인천에 푹 빠져버린 그. 아예 둥지를 인천으로 옮겨 눌러 살 정도로 인천에 매료됐다.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신포동 사설 주차장의 러시아 크렘린 궁전 외벽, 송월동 동화마을 등 인천의 공공조형물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네의 맥락이나 역사성이 반영되지 않은 채 떡 하니 들어서 있는 걸 보니 '시각적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 같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박 작가는 영국 작가 '뱅크시'가 꿈과 희망의 나라 '디즈니랜드'를 비틀어 패러디 해, 물 속에 난민들 떠다니고 신데렐라 뒤집혀 죽어있는 어두운 도시 '디스멀랜드(Dismal land)'라는 공간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인천 중구를 스케치북 삼아 뚝딱뚝딱 공공조형물을 세우며 공간 작업하는 작가 '닥터홍' 추적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 그는 "실존하지 않는 닥터홍을 앞세워,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재밌지만 가볍지만은 않게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사실 작가로서 또 인천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자신의 작업과 작품을 '발언대'로 활용한다는 그는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며 "그래서 인천에서 더욱더 할 수 있는 작업도, 이야기 하고픈 것도 많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오늘도 쉴 틈 없이 '열일' 중이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돌며 시민들의 소소한 이야기와 사연이 담긴 물건을 사는 '이야기 만물상'과 특정 그룹의 참여자들과 여러 번의 워크숍을 통해 그들이 살고 싶은 가상의 국가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보통의 국가들' 작업이 그 예다. 그는 "예상 외로 협조도 잘 해주시고 무엇보다도 재밌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서 작업하면서도 늘 즐겁다"며 "특히 '보통의 국가들' 프로젝트는 모두가 동의하고 살고 싶어 하는 국가를 고민해보는 동시에, 결과물이 실제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마지막에 가서 '아!'하고 허를 찌르는 지점이 있어 정말 매력적이고도 계속해서 활용하고 싶은 장르에요. 역동적인 인천에서 앞으로도 소소한 이야기를 재밌게 담아내 많은 분들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