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즈벡 사람이 먹는 쌀은 고려인이 보급한 쌀이여"
▲ 히들바이요 니아즈메트 할아버지가 멋드러진 '도라지 타령'으로 취재팀을 놀라게 했다.(가족들과 함께 찍은 모습)
▲ 보보잔 마다미노프 할아버지는 고려인 친구와 찍은 사진을 지금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다.
▲ 보보잔 마다미노프 할아버지가 고려인 친구와 찍은 사진 뒷면에는 친구와 그 당시 나눈 이야기가 적혀있다.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서울공원에 올해 세워진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비의 모습. 고려인과 우즈벡인의 화합을 강조했다. 우즈벡 아이가 고려인 아이에게 빵을 건네는 모습이 이채롭다.
스탈린이 고려인을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으로 강제 이주시켰지만 이곳에서도 고려인은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소련 정부의 일본 간첩 누명으로 고초를 겪었지만 이내 현지인과 화합해 엄혹한 시간을 견뎌냈다.
우즈벡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고려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처음에는 '먼 곳에서 온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했지만 이내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바꿨다.
특히 우즈벡 사람들에게 품질이 우수한 볍씨와 선진 농사법을 전해준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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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들바이요 니아즈메트(87).

우즈벡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도라지 타령 히들바이요 니아즈메트(87)

선진 벼농사법 전수한 고려인들 고마워

고려인 이웃에 배운 한국민요 가락 뽑아내

우르겐치 시골마을에서 만난 히들바이요 니아즈메트(87) 할아버지는 취재팀을 화사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우즈벡 정통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잡숩셔" 갑작스런 한국말에 취재팀은 놀랐지만 더 놀랄 일은 식사 중에 일어났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보드카를 몇 잔 들이키시더니 구수한 노랫가락을 뽑아낸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지화자 절씨고 얼씨구 얼씨구 지화자 절씨구 얼쑤." 분명 한국의 민요인 '도라지 타령'이었다. 한반도에서 8000㎞ 떨어진 이곳 우즈베키스탄 시골마을 할아버지에게서 도라지 타령을 듣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할아버지의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사랑가'를 부를 때는 식사를 함께 한 모든 사람이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이후에도 '조선독립군가' 등 5~6곳의 노래가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고려인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이들에게서 배운 한국말과 노래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 고려인을 봤을 때는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자주 싸우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어느 날 부모님이 아파 누워있는데 이웃에 살던 고려인이 와서 머리에 차가운 물수건을 얹고 약초를 캐와 다려 먹이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아 고려인들을 친구로 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래 고려인들과 어울리면서 아리랑, 도라지 타령, 사랑가 등 조선 민요는 물론 자치기, 비석치기, 윷놀이 등 민속놀이까지 한국 문화에 흠뻑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고려인들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선진 벼농사 법을 전수받은 거지"

할아버지는 고려인의 벼농사법이 당시에는 무척이나 놀랍고 신기했다고 한다.

당시 우즈벡 벼농사는 품종개량도 되지 않았고 농사법도 발달하지 못해 수확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고려인들은 강제이주 와중에도 품속에 볍씨를 품고 왔다. 새로운 품종의 벼와 선진 농사법은 우즈벡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현재 먹는 쌀은 고려인이 와서 보급한 쌀이여. 여기 쌀이랑 섞이면서 지금의 좋은 쌀이 됐지"
히들바이요 할아버지는 지금도 한국 사람만 보면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고려인 친구들을 잊지 못한 반가움의 표시다.

올해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행사를 앞두고 우르겐치 고려인문화협회에서는 한국 민요를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를 특별 손님으로 초청하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한국민요 10여곡을 녹음해 후대에 남긴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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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보잔 마다미노프(98)

고려인 친구와 찍은사진 고이 간직해온 보보잔 마다미노프(98)

고려인들 똑똑하고 성실해 부기원에 많았지

이 친구가 김지연 이야 … 생생한 기억의 동기들

올해 98세의 보보잔 마다미노프 할아버지는 3·1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에 태어났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보보잔 할아버지는 유난히 고려인 친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부기원(주산부기학원) 동기인 김지연과 김원봉, 농장에서 일 잘하던 이재환, 엄 발렌진, 남현준, 박기춘 등 한국 이름이 그의 입에게 줄줄이 나온다. 지금도 그 이름을 일일이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 출신으로 1947년 제대 후 고려인을 처음 봤다.

이미 1937년부터 고려인들이 우즈벡 전역으로 흩어져 살았던 것을 감안하면 거의 10년이 지난 후에 그들의 존재를 알았다.

처음 고려인을 봤을 때를 그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군대를 제대하고 집에 와서 아침에 빵을 사러 시장에 나갔는데 아이를 등에 업고 호박을 파는 이상한 여자
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집에 와서 물어보니 멀리서 온 고려인이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고려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군 제대 후 부기원을 다닐 때였다.

부기원은 우리로 치면 주산부기 및 기업회계 전문학교로 졸업 후 은행 같은 곳에 취직이 잘 된다고 했다.
"들어가기 쉽지 않은 곳인데 당시 고려인들은 머리가 똑똑하고 성실해 부기원에 유난히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김지연과 김원봉을 만났다.

"고려인들은 일도 잘하고 거짓말도 안하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 친구를 여럿 사귀었다"는 칭찬이 이어진다.
방안에서 가지고 나온 사진첩에는 젊은 시절 부기원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이 친구가 김지연이고, 여기 이 친구가 김원봉이야"

아직도 친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보보잔 할아버지는 사진 뒷면에 친구와의 얘기를 자세히 적어 놨다.
절친인 김지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상갓집에서 본 고려인 장례풍습에 놀라기도 했다는 보보잔 할아버지는 옛 친구가 그리운 듯 연신 사진 속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타슈켄트주의 집단농장에서 일할 때도 고려인 친구를 만났다. 박희춘은 고려인 농장을 잘 운영해 노동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고 농장을 지도하는 고려인 중 남현준, 이학선 등이 유명했다고 설명한다. "타슈켄트주에 수확량이 뛰어난 유명 농장이 여러 있었는데 그 중심에 내 고려인 친구들이 있었다"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특별취재팀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우르겐치)=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허우범 작가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