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재대란 현실화' 건설현장 타격
▲ 바닷모래 채취사업에 대한 허가가 강화되거나 지연되면서 골재대란에 대한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남해 배타적경제수역(EZZ) 바닷모래 채취가 올 초 사실상 중단된데다 서해 EEZ 채취도 이달말이면 종결된다. 아파트 등 건설현장에서는 대부분 바닷모래를 원재료로 한 콘크리트를 사용한다. 서해 EEZ에서 채취한 바닷모래를 하역하는 모습. /사진제공=해사채취업체
'수심 10m 이하로만' 조건 허가
업계 "확인 불가… 사실상 중단"

가격 2배이상 늘자 수입하기도
불법 채취·불량골재 사용 우려


바닷모래 채취사업에 대한 허가가 강화되거나 지연되면서 골재대란에 대한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국내 골재업계가 확보한 바닷모래량이 올 초 정부가 계획한 규모의 절반 수준에 그쳐 건설현장에서 골재품귀 현상이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바닷모래가 없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남해 배타적경제수역(EZZ)에서 바닷모래 채취사업은 올 초 사실상 중단됐다. 바닷모래 등 골재 채취사업 허가를 협의하는 해양수산부가 '수심 10m 이하'로만 바닷모래를 파내라고 요구하면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조건부로 허가했지만 채취는 중단됐다.

건설업계의 지속된 요구에 해수부는 올 4월 모래 채취량을 지난해(1167만㎥)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650만㎥로 허가했다. 내년부터는 국책용 사업인 경우에만 바다에서 모래를 채취할 수 있다는 조건도 달았다. 하지만 해수부가 내건 모래 채취 조건이 까다로워 사실상 모래 수급은 중단됐다.

골재업계와 건설업계 등은 이전 채취량만큼 허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후 수개월째 답보 상태다.
이에 따라 마땅한 대채 채취지가 없어 모래를 포함한 골재 가격은 급등했다.

현행 골재채취법과 해양환경관리법에 따르면 EZZ의 바닷모래 채취사업 허가는 국토부 소관이지만 해역 이용의 적정성 등을 해수부와 협의토록 규정해 해수부 동의없이 사업진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골재업계는 해수부가 이행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워 사실상 남해 EZZ에서 골재채취사업을 불허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골재채취 펌프 및 호스로 수심 아래 바닷모래를 끌어 올리는 작업환경을 고려하면 골재채취 도중 수심이 10m 이하로 낮아졌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이를 지키기 위해 소극적으로 작업할 경우 수익성이 악화해 사업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충남 태안과 인천 옹진에 대한 골재채취사업도 지난 3월과 8월부터 멈춰섰다. EZZ를 제외한 골재채취사업은 시·군 등 지자체가 해수부와 협의를 거쳐 허가하는데 해수부가 어족보호와 환경파괴 우려 등을 이유로 여전히 '검토 중'이다.

골재업계는 현재까지 확보된 바닷모래량이 올해 국토부가 계획한 바닷모래 수급량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며 채취사업 중단이 장기화되면 골재대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국토부의 '2017년 골재수급계획'에 따르면 올해 건설현장에 투입될 바닷모래 수급량은 총 2700만㎥로 △옹진 700만㎥ △태안 350만㎥ △서해EZZ 1000만㎥ △남해 EEZ 650만㎥ 등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해 EEZ의 골재채취량은 전무하며 옹진과 태안의 경우 당초 계획량의 47%와 28% 수준인 330만㎥와 100만㎥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해사 채취사업 중단이 불법채취 및 불량골재 공급을 부추긴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부족한 골재량을 채우기 위해 바다는 물론 하천과 석산 등에서 불법 채취행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바닷모래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업계가 모래까지 수입하는 처지가 됐다. 모래를 포함한 골재의 경우 운송비 등 기타 비용이 늘어나면 경제성이 나빠져 수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공급량을 맞출 수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모래를 수입한 것이다.

말레이시아산 모레는 지난달 부산항에 입항했다. 중국 바닷바래 수입 중단과 북한산 모래 반입 금지 이후 수년 만에 해사모래 수입마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수입 모래가 들어오면 급한 불이 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체 수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건설현장, 불량 골재라도 써야 할 형편

최근 전국바다골재협의회는 대한건설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한국레미콘공업협회, 인천항운노동조합 등과 함께 해양수산부를 규탄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해수부가 남해 EEZ와 태안, 인천 등지에서 바닷모래 채취를 사실상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현재 모래를 채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서해 EEZ뿐이다.

남해 EEZ 모래 채취는 지난 2001년 채취를 시작한 이후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해수부가 지난 1월 채취를 중단시켰다. 어민들이 어획량 감소와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바닷모래 채취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골재 가격이 오르면서 레미콘 산업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최근 부산 레미콘공업 협동조합은 11월1일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모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공급 단가에 맞춰 레미콘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관계자는 "올해 초 인근 지역 모래 가격이 1㎥당 1만2000~1만5000원이었는데, 지금은 모래 가격이 1㎥당 4만원이 넘는다"면서 "건설사가 레미콘 공급가를 1㎥당 3500원 정도 올려줬지만, 적어도 8000원은 인상해야만 공급 단가를 맞출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레미콘을 팔면 팔수록 적자"라고 밝혔다.

골재 부족 현상은 남해 EEZ 바닷모래를 써 온 영남지방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국 레미콘 수요의 절대량을 사용하는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은 아파트 등 건설현장의 조업중단과 함께 불량 골재가 사용될 경우 부실공사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서해 EEZ모래 공급이 10월말 중단되면 대채재 사용마저 어렵다. 국내 석산 채굴 모래와 자갈을 파쇄한 모래가 있으나 강도가 약해 바다나 강변 자연모래를 섞어야 좋은 품질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레미콘 업체들은 수급이 불안정한 강변 자연모래보다 바닷모래 확보에 더 힘을 쏟고 있지만 최근들어 사실상 공급이 중단됐다.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건설현장에 필요한 바닷모래는 1분기에 300만 ㎥ 가량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말 옹진군 굴업도 해상 바닷모래 채취물량이 소진되면서 수도권 바닷모래 수급이 차질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골재협회 측에서는 골재 채취구역이 전체 바다 면적의 0.04%에 불과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고 바닷모래 채취를 위해서는 사전영향평가 1년, 협의 및 평가 1년을 비롯해 바닷모래 채취 중 계절별로 5년간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8∼2022년 선갑도 인근 해역의 바닷모래 4500만 ㎥를 채취하기 위해 해역이용협의서를 해수부에 제출했지만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인천지역 해사채취업체 관계자는 "옹진군 굴업도 해상의 바닷모래 채취가 9월말 중단되면서 바닷모래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며 "바닷모래 수급에 지장이 생기면서 수개월 전부터 남항 일대 바닷모래 채취업체 야적장에서는 바닷모래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바닷모래 수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 부실화가 우려된다"며 "불량 모래 등 질이 낮은 골재로 레미콘을 생산하는 업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태여서 앞으로 더 큰 사회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량 레미콘은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건축물 및 사회간접자본의 부실과 하자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