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럼] 허무로부터의 탈출
[제물포럼] 허무로부터의 탈출
  • 김신호
  • 승인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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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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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세대들은 치열한 경쟁구도와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신세대들은 '공허함과 허무주의'에 내몰리는 '가엾은 세대'라는 시선을 받는다. 현실 세계와 유리된 온라인 게임에 몰입하는 신세대들도 이러한 허무의 한 표현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지난해 촛불과 SNS, 자유와 민주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그러한 허무주의를 스스로 극복하는 듯하다. 많은 젊은이가 현실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주인공인 이들이 용기를 내고 더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사회 각계는 신세대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에 대해 어느 때보다 더욱 깊게 고민해야 할 터이다.

기자는 10대 후반부터 수 년 간 실존의 허무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지금도 당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지독한 허무가 시작된 것은 고1 봄. 친구들과 독서서클에서 카뮈의 '이방인', 이상의 '날개'를 읽으면서부터였다. 독서를 지도한 선생님들은 주로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셨다. 그 선생님들 역시 허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엔 긴급조치와 계엄 등으로 무척 암울한 시대였다.
'허무'란 일체의 사물이나 현상이 실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고 본다. '없음(無)'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따지고 보면 진정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론적 허무주의는 진리의 인식 가능성에 대한 부정을, 윤리적 허무주의는 행위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고대 희랍에서도 변화하는 자연과 인생을 덧없고 부질없는 무상한 존재로 보았다. 동양에서는 우주·인생의 진상을 무(無)에서 보려고 하는 사상은 노자(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이나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에서도 일부를 엿볼 수 있다.

'나는 갑니다'라는 말도 다 못하고 가버렸는가
어느 가을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가지에 낳아 가지고 가는 것 모르누나

승려 월명사(742~765)는 제망매가(祭亡妹歌)를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얘기한다. 기자 개인에게 고교시절 시작된 허무와 실존의 늪은 20대 초반까지 지속됐던 것 같다. 방황 속에 사르트르를 만났다. 그는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엄청난 약이었다.

1960~7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사르트르(1905~1980)는 다른 철학자들보다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구속받기를 싫어했고 자신과 사람들을 얽매려는 모든 것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는 파격적인 계약결혼을 하기도 했고, 자신의 저서조차 따로 보관하지 않을 정도로 재산에 무관심했으며, 한편으로는 죄책감 없이 쾌락을 누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집단적 폭력을 경험한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평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가치였다. 히피들이 등장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모든 억압적 권력에 맞서며 개인의 자유를 외치던 사르트르는 이들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인간은 세상에 그냥 던져져 있을 뿐이다. 또한 다른 사물과 달리,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 극단적인 허무를 깨닫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펼칠 수 있다. 자신에 대해 본디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나를 본질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존재이다. 유명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은 이런 뜻이었다.

사르트르는 마흔 살이 되던 1945년 교직을 그만두고 <현대>라는 진보적 잡지를 만들었다. 민주혁명연합이라는 단체를 꾸리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 현실에 뛰어들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이 극심하던 1950년대에 그를 자연스럽게 끌어당긴 쪽은 공산주의였다. 사회는 역사의 법칙에 따라 점차 평등한 쪽으로 나아가며 인간 개개인은 이를 위한 도구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의 자유는 무엇에 대해서도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믿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처음부터 공존하기 어려웠다. 결국 1956년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부당하게 체코를 침략하자 사르트르는 공산주의와 결별을 선언했다.

기자에게는 지금도 가슴이 뛰는 대목이다. 허무를 벗어난 실존, 현실에 참여할 수 있는 이유의 발견! 그 뒤로도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투쟁했다. 심지어 1970년대에는 시인 김지하가 독재 정권에 맞서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자,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SNS를 통해 현실에 참여한다. 이들이 용기를 내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함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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